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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모자를 쓴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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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모자를 쓴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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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5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245쪽 | 330g | 128*188*20mm
ISBN13 9788993442472
ISBN10 8993442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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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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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아는 사람의 사랑은 소유욕보다 곁을 내어 주는 다정의 출렁임이 앞섭니다. --- p.15

혼자 있다는 것은 외롭다는 뜻이 아니라 그립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나에게는 그랬습니다. 외로움은 자신의 내부를 향해 있지만, 그리움은 더없이 소중한 누군가를 향해 있습니다. --- p.18

나무에 앉아 있던 새가 목구멍 속으로 날아들었습니다. 비명을 지를수록 새는 더 깊이 부리를 밀어 넣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 타올랐습니다. 소리쳤지만, 소리는 좁은 방을 맴돌다 시체처럼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마치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돋아나면 차라리 고통은 비현실이었습니다. 새를 빼내려 했지만 손을 움직일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목구멍 속에 들어온 새가 부리를 세차게 흔들었습니다. --- p.19

나의 청춘은 강대국들이 한반도에 그려놓은 삼팔선 아래서 군화가 밤을 지배했던 시대를 건너왔다. 모두가 가난했던. 불운했던. 그래서 더욱 간이 영웅적이었던 시대였다. --- p.20

다섯째 아이처럼 먹어야만 다섯째 아이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검었던 다섯째 아이의 이마에서 손톱만 한 흰 살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떠오른 여행자의 별과 같았습니다. 별은 점점 밝아져 다섯째 아이의 얼굴에서 조금씩, 조금씩 어둠을 걷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 p.38

숟가락은 하늘이 주는 것이기에 낳는 일에만 충실해도 아버지는 칭찬을 받았다. 여자들에게 씨를 뿌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남자들이 존경받던 시대였다. 그러나 막상 결혼이라는 것 을 했더니, 아버지라는 임무는 지옥이었고 자기 숟가락은 개뿔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야말로 원하지 않아도 들어야 하는 귀찮은 숟가락이었다. 그것은 때때로가 아닌 매 순간 육체의 피곤을 요구했다. 물론 나에게는 때때로가 몸에 맞는 옷이었다. --- p.40

엄마는 가끔씩 정신이 돌아왔을 때 동일한 행동 한 가지를 반복했습니다. 빨래였습니다. 우물가에 앉은 우리 모녀는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다정이 누군가의 미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물은 서로의 미안으로 뒤섞여 차올랐다가, 서로의 침묵으로 흘러 넘쳤습니다. --- p.68

그래서 가끔은 이런 대화도 들려왔다.
"엄마가 아버지 버릇을 잘못 들여서 엄마가 더 힘든 거야!"
잠들기 전 이런 맛없는 이야기들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곤 했다. 그런 때는 자식들에게 섭섭했고 아내에게 화가 났다.
"차라리 혀 주지 말제. 여편네가 힘든 티를 내서 나를……."
나는 나를 요 밑에 깔았다. 자식들과 아내에게 신세지는 삶을 사는 한, 즉 다시 말해 내가 유병장수를 멈추지 않는 한, 멋있는 아버지나 남편이 될 수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내는 나처럼 바나나를 요구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 p.77

"아장아장. 아장아장."?
"얘가 엄마를 애 취급하네!"?
이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은 싫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아이로 태어나 아이로 죽어갑니다. 그것이야말로 신의 공평이겠지요. 삶의 무거움은 제각기 다를지라도 죽음은 모두에게 동일한 가벼움을 선물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온전히 태어나는 순간은 죽음과 마주할 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p.87

자식들이 퇴근하면 뭐, 거의 피곤과 안 피곤의 대화로 밤이 풍성해졌다. 나와 단 둘이 있을 때는 병든 닭처럼 피곤을 주장했다면, 자식들 앞에서는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멀쩡하게 안 피곤을 실천했다. 이런 아내가 앓아눕기라도 하면 나는 자식들의 따가운 눈길을 피해 이불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아내의 병이 곧 나의 장수와 연결된다는 느낌은 스스로에게 피신을 요구했다. 그럴 때면 아내가 미워졌다. --- p.90

밥상을 걷어찼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가난한 집구석에서 살아야 해? 왜? 이럴 거면 도대체 뭐 하러 낳았어!"
벽에 붉은 지도가 그려졌습니다. 다섯째 아이가 지도를 향해 머리를 박아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그냥 나 죽어버릴 거야!"
다섯째 아이의 머리를 감싸 안았습니다. 손을 뿌리쳤습니다. 방을 뛰쳐나갔습니다. 방의 얼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보이지 않는 시간이 벽의 지도 속에서 뒤척거렸습니다. --- p.93

달이 자정을 지나간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늘 생각했다. 살아가야 할 날보다 지나온 날들을. 더없이 먹고 싶었던 음식과 가끔씩 보고 싶었던 형제들을.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아내가 구급차에 실려 간 이후 나는 매일 아내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내 곁에 앉아 있는 모습을 꿈꾸었다. 그것은 내 몸이 망가진 이후 상상하기 시작한 유일한 미래였다. 달이 자정을 지나간다. --- p.97

장애가 있는 자식이 판검사나 군인이 돼 부모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큰아이를 어떻게 해서든 교육하려고 청와대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때는 정말 불쾌했다. 남편의 무능력을 온 세상에 떠들어대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책을 권하는 어머니보다 일을 시키는 아버지를 좋아할 자식은 없다. 아내가 자식들의 교육에 친절할수록 나는 무능력한 아버지가 됐다. 그래서 한 번은 자식으로부터 죽음의 공포를 맛보기도 했다. --- p.100

그날 이후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교회에 찾아갔나 봅니다. 점과 굿을 좋아했던 남편과 시어머니는 무당이 돼야만 자식들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고 포기하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교회까지 찾아와 목사님께 욕설을 퍼붓기도 했나 봅니다. 그렇지만 나는 고통을 좀 더 잘 견디는 법을 배웠나 봅니다. 그런 남편과 시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결심했나 봅니다. 내게 강 같은 슬픔을 걸어서, 내게 강 같은 평화를 노래하기 시작했나 봅니다. --- p.109

큰아이와 둘째 아이를 해외로 입양시켜 배움의 기회를 열어주겠다고. 목사님을 찾아가 아이들의 입양을 부탁했습니다. 목사님 역시 두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그러는 편이 좋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입양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 p.114

번개가 눈앞에서 번쩍거렸다. 머리에서 이마로 흘러내리는 것이 있었다. 피가 방바닥에 고이는 순간 자식에게 얻어맞았다는 비참한 마음보다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나는 백정처럼 살았다.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하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나를 찾아왔다. 가축을 도축하고 나면 몸에서 죽음의 냄새가 진동했다. 어쩌면 그 순간 나는 내 손에 의해 죽어 갔던 짐승들의 울음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 p.136

사랑을 말하기 위해 사랑을 촛불로 태우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살해할 수 있는 비명은 침묵으로만 아름다워졌습니다. 남편을 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이어야만 그를 위한 수고가 그녀의 죽음으로 돌아와도 괜찮을 거라고 웃었습니다. 그때부터 남편이라 생각하면 불가능했지만, 남이라고 생각하면 가능한 용서들이 시작됐습니다. --- p.161

아내에게 1억을 발음한 순간, 나에게도 1억은 바람이 아닌 사실이다.
"알았어요! 제가 한 번 이야기해 볼게요."
아내가 흔쾌히 동의한다. 결혼 후 처음 있는 일이다. 나는 일생 동안 아내의 의견과 무관하게 살아서 이런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없다. 부부가 한 마음으로 무엇을 한다는 것은 분명 다른 느낌이 있다. 지금 이 기분이면 병상에서 일어나 두 발로 뚜벅뚜벅 병원을 걸어 나가 양자의 파양을 선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p.227

나는 튤립들이 무성하게 핀 봄의 정원에 홀로 앉아 있습니다. 홀로 앉아서, 아이들과 함께 빨강, 노랑, 하양을 걷습니다.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닌 것만 같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늘 그랬습니다. 함께 있었지만 혼자 있었던 것만 같았고, 혼자 있었지만 함께 있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외로움이라 말하겠지만, 나는 그리움이라 말하겠습니다. 지금 나는 혼자 있지만 괜찮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 p.233

참, 오래 살았습니다. 평안을 느끼기까지 80년을 뒤척였습니다. 늘 함께, 늘 혼자서 걸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는, 혹은 내일 아침 직장을 향해 출입문을 여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손을 흔든 후에는 나의 시간 역시 완벽하게 멈추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p.234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소설 《빨강 모자를 쓴 아이들》은 가족이야기이고 두 명의 화자話者가 등장한다. 첫 번째 화자인 조영애 여사는 근·현대사의 큰 변곡점을 온몸으로 살았던 여성이다. 대한민국의 근·현대를 조망할 때 여성은 그 존재 자체로서 불행했다. 유교와 농경사회의 전통과 의식은 그녀들의 삶을 억압했고 여성은 남성에 부속된 존재였다. 게다가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벌어지기 시작한 빈부격차는 그녀를 곤란에 처하게 했다. 그러나 가난이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었다면 가부장적인 권위와 그와 동반된 폭력은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다. 일방적 권위 앞에서 아이들을 위해 희생을 감내했지만 고통은 상흔을 남겼다. 아이들을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키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입양을 알아보기도 했고 폭력적인 상황에서 탈출하고자 했으나 장애인으로 생존해야 할 아이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주저앉았다. 그녀의 삶이 점점 피폐해져 가던 어느 날 인내가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였다. 철없이 굴던 여섯 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폭력을 가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야기한다. 그녀 안에 내재되어 있던 폭력적 상황이 아이에게 전가되었던 그 순간 그녀는 진심으로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부끄러움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빨강 모자’를 씌워 주었다. 그것이 그 아이와의 마지막이었다. 교통사고였다. 수많은 상처 가운데 그녀가 가슴속 깊이 묻어둔 기억이다. 시간은 흘렀지만 가난은 여전했고 뒤늦은 남편의 정상적인 사회활동으로 희망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깐의 바람도 덧없이 어느 날 출근하던 남편이 쓰러지고 입원하게 되었다. 폭력은 종식되었지만 다시 가난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화자는 조여사의 남편이다. 군화와 산업화로 상징되던 시기는 어쨌건 남자들의 시대였다. 변변찮은 수입에도 늘 친구와 술은 함께했고 가족은 뒷전이었다.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것이었다. ‘여자와 북어는 두드려야 한다’던 가르침은 신념이 되었고 맘에 들지 않는 일이라도 생기면 부인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다. 그게 남자의 삶이었다. 남자란 모름지기 그래야 했다. 그렇게 합리화를 해가며 살았다.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상장을 받아온 그림 잘 그린 첫째 아이는 중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예체능은 돈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누라는 달랐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야간학교에 보냈다. 남자는 아이가 학교에 가지 못하게 어깃장을 놓았다. 보다 못한 조여사가 청와대에 편지를 쓰고 답신이 없자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뜻하지 않았던 소득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다 날리고 잠깐 제 정신을 차리고 보일러 공장에 취직했다. 남자가 정말 제대로 삶을 살았던 3년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쓰러졌다. 남자는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시름시름 앓기를 반복하던 중에 부인 역시 쓰러졌다. 남자는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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