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여기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인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싸우기 위해.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바로 우리 각자를 위해서.
우리는 다 같이 싸우고 다 같이 살아남아 조국으로 돌아갈 동지다.
만약 조국이 그립고 가족이 그립다면 하늘을 보아라.
우리가 조국에서 보던 하늘과 이 불란서의 하늘은 같은 것이다.
그러니 너무나 그립고 너무나 슬퍼서 울고 싶다면 보아라, 저 하늘을.

처음 류 작가를 만났을 때 쌍꺼풀 없이 커다랗고 동글거리던 류 작가의 눈과 눈동자가 떠오른다. 소년 같은 웃음에 하하하, 아니 헤에 하고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리던 소년을 간직한 삼십대 남자. 그 후 대화를 통해 류 작가의 몸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매력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단순하지 않은 이끌림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만나고 우리는 지인이라는 틀을 형성해갔고 류 작가는 나에게 소설을 읽고 느낀 점을 조금만 써달라고 부탁하며 자신이 쓴 소설 원고가 담긴 USB를 내밀었다. 난 그러한 부탁을 흔쾌히 아무런 고민 없이 그 자리에서 수락하였다.

평상시 류 작가와의 대화에서 느끼던 그 번뜩이는 아이디어들과 상상력이 이 소설에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컴퓨터도 잘 모르는 내가 모니터를 쳐다보며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였고, 그렇게 한두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이 ‘류명찬’이라는 인간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어떠한 상상의 공간이 펼쳐져 있는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1차 대전.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아니 우리 한국인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쟁이라고 생각했던 유럽의 전쟁이 우리와는 절대 상관이 없던 전쟁이 아니게 만든 소설. 그리고 그 전쟁터를 배경으로 한국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나는 읽고 있었고 탄성을 토해냈던 것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혹은 배가 고파서,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모여든 700명의 조선인들이 1차 대전이라는 우리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전쟁터에서 일본군의 총알받이로 죽어나간다는 설정은 감히 누구도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을 잘 모르기에 뭐라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집어든 독자들이여. 최소한 이거 한가지만은 확실히 말해줄 수 있다. 전쟁터가 배경이지만 전쟁터에 서 있는 순수한 자들의 아픔을 담아낸 독특한 소설이 탄생했다! 라고. 엄청난 원고의 분량에도 불구하고 난 류명찬 작가의 남들과 다른 상상력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앞으로 그가 써낼 또 다른, 남들과 다르다고 평가받을 소설을 기대해본다. 사설이 길면 재미가 없다(솔직히 길게 쓸 만큼 글재주도 없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이제 빠져보자. 1차 대전의 전쟁터인 프랑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그 사람들의 마음과 안타까움 속으로.
조상구 (영화배우, 탤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