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민족사회의 한 시대의 역사를 제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이 주도적으로 영위하는 경우, 그 역사 영위의 목적 전체가 지배민족 중심으로 될 뿐만 아니라, 그런 지배목적을 위해 피지배민족의 역사적 주체성과 민족적 자존심은 철저히 파괴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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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눈으로 보면 인간의 역사는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더 자유스러워지고 고루 풍부해지고 더 평등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해왔고 또 발전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점에 잣대를 맞추어 인간사로서의 역사를 이해하고 평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적 자유, 경제적 균부, 사회적 평등, 문화사상적 자유 등이 더 올바르게 더 빨리 확대되게 하려면, 그 길이 역사의 옳은 길임을 알고 개인사나 민족사나 인류사 전체를 그쪽으로 가져가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이 쌓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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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의 역사는 어느 개인이나 한 집단의 의지 또는 작용에 의해 전진하는 것은 아닙니다. 박정희정권 시기 동안 경제건설이 어느정도 이루어졌다 해도, 그것이 박정희를 중심으로 하는 일부 집권세력만의 공로나 업적이 아님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1960년대 이후의 경제발전을 역사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중세시대까지 동양문화권 안에서 높은 문화수준을 가졌습니다만, 근대사회로 오는 과정에서 한때의 침체가 원인이 되어 식민지배를 받는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3.1운동 등 민족해받운동 과정을 통해서 그 민족적 저력은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해방과 민족상잔을 겪으면서 이 저력은 더욱 굳세졌고, 1960년대에는 4.19'운동'을 폭발시켜 독재체제를 무너뜨릴 만큼 급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분출된 민족적 저력이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구일본군의 일부인 괴뢰만군 출신 중심으로 구성된 박정희정권의 강압에 의해 오도되었습니다. 군국주의 일본의 군벌과 재벌이 야합하여 만주를 침략하던 역사를 현장에서 보고 배운 그들이, 그 전철을 밟으면서 군부와 연계된 재벌중심 경제체제를 성립시키는 방향으로 민족적 저력을 잘못 이끌어갔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박정희정권 이후의 한국경제는 경제적 민주주의가 사멸되다시피 하고, '문어발식'이니 하는 일종의 천민자본주의가 일반화했으며, 그 틈에 급성장한 몇몇 재벌 중심으로 정경유착의 악습이 누적되었습니다. 1990년대로 오면서 그 폐단과 허점이 한꺼번에 드러나 'IMF 관리체제'를 부르게 되었고 구조조정이니 하는 조치들이 등장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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