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모를 당연하게 여기는 프랑스에서는 학부모 모임 시간이 평일 저녁으로 정해져 있다. 입학식이나 졸업식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고, 동아리 활동이나 수학여행도 보조금과 교사의 의지에 따라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
성적 회의에는 학생 대표와 학부모 대표가 함께 참석한다. 이처럼 모든 면에서 일본 학교와는 다르다. 가만히 비교하다 보면 학교란 꼭 이래야만 한다고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 p.11, [Prologue - 초등학교는 일본에서, 중학교는 프랑스에서?] 중에서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면 그것이 정말 자유일까? 미묘한 감정이 전해져왔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은 등줄기를 오싹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표현한 내용을 이유로 저널리스트를 죽이다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이 단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에는 나 역시 위화감을 느낀다. 테러리스트가 공격한 것은 ‘표현의 자유’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언론의 자유는 지켜져야 한다고, 온 국민이 입을 모아 확인했다는 사실은 훌륭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에서 오직 하나의 해석만이 아이들에게 강요되고 있다면, 이런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이 불편하다. 보편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라 할지라도 국가가 나서서 그것을 가르치려고 든다면 어딘지 모르게 변질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도덕’에는 이처럼 꺼림칙한 기분이 따라온다.
--- pp.34-35, [Part 1 - 어쨌든 도덕은 철학의 밑바탕] 중에서
일본의 입학식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부모들이 신경을 써서 차려입고 부쩍 성장한 아이의 모습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중학 생활이란…” 하는 지루하지만 한편으로는 감동적인 구석도 있는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를 줄서서 듣는 일본의 입학식, 그것도 나름 괜찮았는데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아쉽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또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나가는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안 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입학식을 안 한다고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국기를 보면서 국가를 부르는 일도 없고, 국가를 부를지 말지 선택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도 않으니 한편으로는 차라리 마음이 편하기까지 했다.
--- p.80, [Part 2 - 입학식이 없는 학교가 있다니!] 중에서
우리 딸은 제6학급에서 유급을 권유받았지만 아이의 집중력 부족이 유급으로 개선되지는 않을 것 같아 유급시키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유급의 여부는 부모에게 달려 있었다. 그런데 다음 해에도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담임 교사로부터 “유급을 시키지 않은 것은 부모님의 실수입니다. 미쓰는 지식에 구멍이 너무 많습니다. 다른 수를 쓰지 않으면 만회할 수 없을 겁니다”라는 말을 듣고, 제5학급에서 제 4학급(중학교 3학년, 일본의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갈 때 유급을 시키기로 했다. 이런 경우는 일반적으로 드물어서, 이때 유급한 학생은 딸아이 혼자뿐이었다. 하지만 작년에 유급했던 원래 동급생들도 있고, 담임 교사가 어떻게 잘 구슬렸는지 딸은 이렇게 말하며 거들먹거렸다.
“나한테 유급은 기회야. 학생이 유급하면 학교는 돈이 드니까 성적이 올라갈 것 같지 않은 아이는 그냥 진급시킨대. 하지만 선생님이 나한테는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
--- pp.114-115, [Part 3 - 유급하거나 혹은 월반하거나] 중에서
예를 들어 문제①에 짤막하게 ‘전체주의’라고만 답해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가 없다. ‘정치 체제는 무엇인가’라고 물었으니 ‘전체주의이다’라고만 대답하면 충분할 것 같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이해하기 위해 갖고 있는 지식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까지 테스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공부를 하다 보면 시험 문제뿐만 아니라 길거리에 붙은 포스터나 잡지 기사를 보더라도 주어진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소양을 기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무의식중에 탄성을 질렀다.
--- p.204, [Part 4 - 다 맞게 써도 만점을 받기 힘든 역사 시험] 중에서
프랑스에서는 인문 계열 학생뿐만 아니라 고등학생 전원이 이런 논평을 쓸 수 있도록 텍스트를 읽는 법, 분석하는 방법, 분석에 필요한 개념, 문학사에 관한 지식 등을 수업 시간에 가르친다. “프랑스는 시험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논술을 요구하는 모양인데, 그 많은 학생들이 어떻게 그런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걸까요?” 최근에 어떤 일본인과 대화를 하던 중 이렇게 감탄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으니까요.” 아이들을 통해 그 현장을 실감한 나의 대답이었다.
--- p.249, [Part 5 - 바칼로레아 엿보기] 중에서
어쨌든 모든 과목에서 논술을 시키는 만큼 국어는 항상 단련되고 있다. 바칼로레아의 철학 시험뿐만 아니라 역사?지리 시험을 통해 서도 국어 실력을 갈고닦을 수 있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느 과목에서든 ‘자신의 생각’을 쓰는 행위가 구체적인 지식과 몸에 익힌 분석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철학 시험 문제에 철학자의 이름도 저술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철학을 공부하지 않고도 답안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지리 문제에서도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지를 테스트한다. 예를 들어 2016년 바칼로레아의 역사 문제는 ‘역사가와 제2차 세계 대전의 기억’, ‘역사가와 알제리 전쟁의 기억’, ‘드레퓌스 사건 이후 프랑스의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있어 미디어와 여론’ 중 하나를 골라 논술하는 것이었다. 모든 문제에는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근거로 해서’ 쓰라고 지시되어 있다. 즉, 지금까지 공부한 지식을 묻고 있는 셈이며, 더 나아가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갖고 있는 지식과 주어진 자료 및 텍스트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내용을 근거로 서술하시오”라는 의미인 것이다.
--- p.261, [Epilogue① -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