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1987년이니,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되어간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반세기가 되어가고, 한 형제로 태어났던 큰누이와 막내누이도 돌아가신 지 벌써 오륙 년, 언제나 이 한 세상에서 함께 지낼 것 같은 가족들도 어느새 반 이상 우리 곁을 떠나 저세상으로 떠나가셨다.
그리움도 많이 퇴색되어버려서 문득문득 떠오르긴 하지만 가슴이 저미거나 보고 싶다는 애틋한 감정은 떠오르지 않는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신기한 인생. 성 데레사님의 말처럼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은 여정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누이들은 같은 성을 쓰고 같은 집에서 아빠, 엄마, 누나라는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며 소꿉장난하듯 재미있게 놀다가 ‘이제는 그만 들어와 밥먹어라아―’ 하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먼저 돌아가 버린 동무들처럼 느껴진다. 남은 우리들도 언젠가는 ‘인호야, 그만 들어와 밥 먹어라아―’하는 소릴 들으면 이 소꿉장난의 낯선 골목길을 떠날 것이다.
남아 있는 우리들은 먼저 집으로 들어가 버린 동무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고 슬퍼하고 있지만 우리들이 머물고 있는 이 골목길이 오히려 바람불고, 쓸쓸하고, 무서운 낯선 곳일 것이다. 먼저 편안한 저 세상의 집으로 돌아간 엄마와 아빠, 그리고 누이들은 살아 있는 우리들의 눈으로는 보지 못하는 신비의 커튼 사이로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이제 날이 저물고 있으니 어두운 골목에서 그만 헤매지 말고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머니에 관한 글을 묶은 원고를 읽고 교정하면서 나는 많이도 울었다. 새삼스러운 그리움 때문이 아니라 살아생전 어머니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슬픔이 솟구쳐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서두는 어머니가 예순여덟 살 때부터 시작되는데, 그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와 큰 차이가 없다. 내가 항상 노인으로만 기억되던 어머니의 나이와 동갑내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어머니를 6.25전쟁이 끝난 직후 길거리에서 손에 더러운 검정칠을 하고서 돈을 안 주면 그것을 묻히겠다고 위협하면서 동냥질하던 거지아이처럼 죽음이라는 검정칠을 들고 비겁하게 자식들인 우리들을 끊임없이 위협하던 할망구 거지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의 어머니로 보지도 못하였고, 어머니의 고통과 비명소리를 듣지 못하였던 비정한 자식이었다. 어머니는 쓰레기처럼 내 마음 속의 하치장에 함부로 버려졌었다.
아아, 어머니는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옛날 자식들은 어머니를 지게에 엎고 돌아올 수 없는 산골짜기에 버리고 돌아왔다고 하였는데, 나는 비겁하게도 어머니를 볼 수 없고,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는 감옥에 가둬두고, 좋은 옷 입히고 매끼마다 고기반찬에 맛있는 식사를 드리고 있는데 무슨 불평이 많은가, 하고 산채로 고려장시키는 고문으로 어머니를 서서히 죽이고 있었던 형리(刑吏)였던 것이다.
그렇다.
어머니는 그토록 고생하여 지문조차 남아 있지 않은 손으로 수고하여 훌륭하게 자식들을 키웠지만 머리는 좋은 대신 몰인정한 자식들에 의해서 독방에 감금되었던 종신형의 죄수였다.
어머니로서의 종신형 업보가 끝난 것이 바로 죽음이었으니, 어찌하여 나는 그토록 어머니에게 상처를 입히고 어머니를 고문하였을까. 함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어머니였으니, 그러한 우리들을 저 세상에 가신 어머니가 과연 용서하여 주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