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은 본래 여름 햇살보다도 무서운 법이다. 여름 햇살이야 더워서라도 피한다지만, 봄 햇살은 거죽 타는 줄 모르고 고스란히 내리쬐게 마련인 것이다. 평저선(平底船)의 선미(船尾)에 앉아 있던 자명의 이마에도 뜨거운 햇살 조각이 내려앉았다. 어지간히 쬐었으니 피해봄직 하건만, 자명은 꼼짝도 않고 햇살을 맞이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천지를 뒤흔들 만한 기세를 발출했던 노인이 앞에 앉아 있으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신개 양비자(梁枇子)?’ 자명은 조심스럽게 노인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때가 꼬질 꼬질 끼어 있는 수염이나 아무렇게나 기워 입은 옷이 영락없는 늙은 거지의 모양새다. 조금 전의 기세를 떠올리자면 필시 범인(凡人)은 아닐 터. 아마 일부러 거지 행세를 하는 모양이다. 자명이 자신을 흘끔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탓일까? 양비자라 스스로를 칭한 노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헐헐헐! 네 얼굴을 보아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로구나! 내 그동안 신개라는 별호만 믿고 으스대고 살았는데,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게 되었는걸!” 양비자의 말투는 유쾌했지만, 그 속뜻을 생각하면 민망하기만 하다. 자명은 붉어진 얼굴로 예를 갖추어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견문이 부족하여…….” “사죄할 것 없다, 사죄할 것 없어. 나 역시 너처럼 기이한 아이가 있는 줄은 모르고 살았으니 견문 없기로는 매한가지지. 당 노괴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었을 게야.” 양비자의 말이 끝나자 자명이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당 노괴라는 이름은 파파를 말함이 분명할 터. 파파가 약속한 석달의 시간이 지나 마침내 파파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