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을 오차 없이 완벽하다고 여기는 최고의 피아니스트 이리스 셀린, 그녀는 다발성 경화증에 걸린다. 다발성 경화증이란 온몸의 근육이 굳어져 가는 희귀병이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물려줄 딸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한 재생의학자를 통해 복제기술을 빌어 ‘시리(Siri)’ 라는 복제인간을 창조해 내기에 이른다. 시리(Siri)라는 이름은 이리스(Iris) 를 거꾸로 쓴 것이다. ‘Iris-Siri-Iris-Siri...’ 이름을 거꾸로 썼을 때의 순환 성을 통해 알 수 있듯, 이리스에게 시리는 자신과 똑같은, 어쩌면 자신을 대신하여 영원한 삶을 살아줄 자기의 분신이다. 하지만 이리스의 복제 계획에 동참했던 모티머 피셔 교수의 의문, ‘자기 자신의 복제인간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라는 의문은 유효하다. 이리스의 실수라면 시리에게 ‘고유한 감정을 주입시키지 않을 것’ 이란 주문을 빠뜨렸다는 점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주문이 근본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회의로부터 비롯한다. 이리스의 생각은 시리에게 자신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갈등까지 고스란히 전가할 것이라는 데는 미치지 못하는 치명적 결함을 낳는다.
시리는 이리스의 바램대로 철저한 계획 아래 피아노 연습에 몰두하면서, 어머니인 이리스에 대해 애정과 증오, 동경과 질투를 동시에 키워간다. 유년시절의 시리는 엄마의 뜻대로 조종되는 꼭두각시와 같았으나, 점차 자신을 근친상간이나 성폭행의 피해자와 다를 것 없는 ‘잘못된 부화’의 결과물로 인식한다.
한편 아버지의 부재를 회의하기 시작하며, 아버지와 어머니로 이루어진 정상적인 가정을 부러워하는 시리, 그녀에게 있어 이리스는 냉혹한 훈육자로서 기능할 뿐 진정한 모성의 경험대상은 되지 못한다. 시리는 엄마보다 오히려 유모 모자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고 이리스에 대해 반항심을 갖게 되며, 시리의 이리스의 흉내를 내어 이리스의 연인을 유혹하기까지 한다. 이리스 역시 자신의 딸을 젊고 매혹적인 경쟁자로 인식하게 됨으로써 일란성 쌍둥이 자매이자 모녀인 두 사람이 관계 역시 파국으로 치닫는다. 문제는 이리스가 시리를 하나의 독자적인 존재로 자각하지 못하는데 있었다. 시리는 자율의지를 가진 고집 센 바로 자신, 철저한 계획 하에 양육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감정과 자율의지를 가진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이리스와 시리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연주회, 시리의 연주에는 오리지널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담겨 있지 않았고, 연주회의 참담한 실패 이후 시리는 이제까지의 삶을 정면 배반하고 엄마와는 전혀 다름 독자적인 삶에 발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