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p 정월대보름이다. 공양간에서는 타닥타닥 장작불을 지펴 가마솥에 오곡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이고, 채공간에서는 7가지 나물로 부처님 전에, 스님들께 공양 올리며 여러 신도분들과 함께 3일기도로 동안거 회향 준비가 한창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가마솥의 뚜껑이 드디어 열렸다. 캬~~.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어떻게 밥에서 이런 향이 나지? 비결은 싸리나무에 있었다. 싸리나무를 꺾어다가 솥 제일 아래에 깔아 두고 그 위에 밥을 찌는 것이다. 눈과 코와 입이 다 같이 행복해지는 오곡밥이다.
46p 불영사에는 8월이면 백련이 무성하게 피어난다. 무성하게 피어난 백련의 향기는 온 도량을 메우고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백련은 뿌리, 잎, 꽃이 모두 약용으로 사용되는데 타박상에 연잎을 붙이면 금세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향으로 가득한 연잎 속에 잡곡찰밥을 넣어 쪄서 향을 가득 머금게 한 후 한 잎 한 잎 먹는 연밥 맛이 일품이다.
63p 어느 해인가 여름 감기가 돌아 가을에 말려 둔 능이로 자주 국을 끓였더니 선원 스님 중의 한 분이 지역에 따라 귀할 수도 있는 능이국을 보고 “이렇게 자주 맛보기는 처음”이라며 “감기 때문에 입맛이 떨어졌는데 기침이 가라앉고 기운이 돈다”고 하였다. 항암작용이 있는 능이를 가을에 넉넉히 구입하여 적당한 크기로 잘라 말려 놓고 국을 끓이거나 차로 음용하면 감기, 몸살 등에 효과를 볼 수 있다.
69p 어느 장날, 읍내 야채가게를 들렀다 이곳에서는 보기 드문(주생산지: 전남) 매생이가 제법 많이 판매대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쌀쌀한 바람이 불자 언젠가 먹어 본 매생이국이 생각나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눈으로 보니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냉동된 것에 비할까. 산지의 신선한 재료를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85p 밭에는 주렁주렁 풋고추가 많이도 열렸다. 고추는 밑에서부터 하나둘씩 붉게 익어 가고 껍질은 두꺼워져 색이 점점 짙은 녹색으로 변해 간다. 얼마 전에 감자를 캐 낸 감자밭은 골을 내어 가을 배추밭을 준비하고 습하고 그늘진 밭에는 토란이 한창이다. 해우소 가는 길가로수로 만들어진 옥수수는 알이 여물어 가고, 잦은 장맛비는 깊고 넓은 계곡을 힘차고 시원한 절경으로 만드는가 하면 운무로 뒤덮이는 아침의 산사는 신비로운 정적을 맞는다. 부처님 그림자 드리운 불영지, 커다란 잉어의 물놀이에 향기롭고 맑은 연잎이 흔들린다.
113p ‘어느리’라는 말을 쉽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모양도 처음 보거니와 맛 또한 새롭다. 공양 올린 분의 설명대로 부드러운 것은 쌈이나 전으로 하고 중간 것은 나물로 무치고, 조금 거친 것은 장아찌를 담그기로 한다. 얇게 밀가루 반죽을 발라 부치니 선명한 초록이 감돌며 향긋함이 묻어난다. 어수리나물, 새롭지만 거부감이 전혀 없고 고소한 맛이 참으로 특이하다.
131p 꽃샘추위가 지나가고 늦봄에 내린 눈이 녹기 시작하면 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새순이 돋아나고 밭에 냉이가 돋기 시작하는 4월이 조금 지나면 감자씨를 심는다. 이때 씨감자의 눈을 잘 따 줘야 하는데 만약 서툴러 감자눈을 제대로 따주지 못하고 심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감자는 하지가 지나면 캐는데 이때는 장마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므로 시기를 잘 맞춰 수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65p 삼근은 불영사 인근 마을이다. 노보살님들이 직접 줍고 껍질을 까서 절구로 빻은 도토리가루로 묵도 쑤고 떡도 만들어 보았다. 독성이 없는 쌉싸래한 고유의 맛을 그대로 살렸다. 시장에서 간단히 묵만 구입하면 만들기까지 얼마의 공이 들어가는지 알기란 쉽지 않다. 그중에서도 묵은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것 중의 하나이다. 일미칠근(一未七斤)이라 했던가!
227p 몇 년 전, 도반이 차를 타자 멀미가 심해 준비한 감잎차를 마시게 했다. 늘 멀미에 시달리던 도반은 신기하다는 듯이 멀미를 안 한다며 무슨 차냐고 물었다. 이처럼 비타민C가 풍부한 감은 숙취 해독과 멀미 예방에 효과가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꾸준히 복용하면 감기를 예방하고 눈의 피로도 덜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