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이런저런 이유로 다섯 달을 머물렀다. 떠날 때가 되니 중국에 더 있고 싶어졌다. 마음을 주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싫어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거라 여겼던 중국은 끈질기게 나를 달랬다. 특히 거리마다 볶는 기름 냄새가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볶은 음식을 삼시 세끼 공복에 밀어 넣었더니, 추위에 그 위력을 실감했다. 기름으로 코팅된 내장은 강추위 모래바람에도 끄떡없는 중국형 인간으로 나를 변모시켰다. 기껏 고품질의 지방 내장을 만들어놨더니, 베트남으로 입국해야 한다. 그게 너무 억울해서, 베트남 국경선을 바라보며 마지막 중국 국수를 후루룩거리고 있다.
--- ‘ 잘해 줘, 베트남. 웬만하면 좋아해 준다니까’ 중에서
베트남이 이런 나라였구나. 맛의 절대 무림고수가 우리나라 이마트보다 많은 나라가 베트남이었구나. 신의 손맛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고작 길거리 좌판에서 없는 사람의 배를 채워 주고 있는 나라였구나. 할머니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손짓으로 국통을 휘젓고 있었다. 베트남의 즐거움은 먹는 데서 찾아야 한다. 방향을 잡았다. 국수를 먹는 그 짧은 시간은 국물과 내가 물아일체가 되는 신비 체험이었다. 앞으로도 생활력 강한 베트남 사람에게 당하고 상처받더라도, 이 국물 맛을 기억하며 겸허히 받아들이리라. 험담도 조금만 하리라. 은혜로운 한 끼였지만, 국수의 신에게 사사로이 무례하고 싶지 않아 잔돈은 기어이 다 챙기고 일어섰다.
--- ‘ 쌀국수의 여신, 커피의 신선이 사는 도시 ‘하노이’’ 중에서
“그러게 문 좀 살살 따지 그랬어. 멍청아!”
코끼리는 그렇게 말하고, 궁둥이를 씰룩이며 사라졌다. 코끼리 옆에 채찍을 든 소년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본 광경을 믿지 못할 뻔했다. 나보고 멍청이라고 했던 건, 내 뛰어난 독심술 덕이지만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코끼리는 여행자들이 많이 몰려 있는 카페 쪽으로 향했다. 여행자들과 사진을 찍고, 돈을 버는 모양이었다. 치앙마이가 코끼리 트레킹으로 유명한 곳인 건 알았지만, 일과를 끝낸 코끼리가 대로변을 소처럼 흔하게 다닐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를 위해 동화 속에서 등장한 코끼리는 아니었지만, 내 삶을 고민하는 순간 코끼리가 나를 지나쳤다는 것만으로도 이깟 고민은 집어치우기로 했다. 집에서는 에버랜드 사파리에 가지 않는 한, 코끼리는 내 삶의 근처도 얼씬거리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나에게 중요한 차이였다.
--- ‘ 결백하지만 비참하게 꺼지라는 거지?’ 중에서
비가 추적인다. 나는 오토바이를 반납하러 갔다. 더 이상은 오토바이를 탈 수도 없을뿐더러 오토바이를 타기도 무서웠다. 직접 숙소까지 와서 오토바이를 수거해 가면, 몇만 원의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착한 숙소 주인장의 소개로, 1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오토바이를 실을 수 있었다. 비를 맞으면서 망가진 오토바이를 타고, 오토바이를 배달해 준다는 집을 찾아 나섰다. 아주 캄캄한 밤이었고, 붕대 사이로 또 상처가 번지는 것이 보였다. 몇만 원 아껴 보겠다고 그 몸으로, 골목골목을 휘저었다. 그러고는 혼자 피식 웃었다. 참 열심히 사는구나! 참 구차한데, 그래도 그 구차함을 열심히 뒤쫓는 내가 싫지 않았다.
--- ‘ 붕대를 감은 미이라는 ‘빠이’를 사랑했다’ 중에서
“군인들인데 무조건 여기서 빨리 나가래.”
아무리 발이 아파도 내가 갔어야 했다. 타인의 호감을 빨대처럼 흡수하는 나란 인간이 본분을 잊고 발바닥 물집에만 신경 썼다. 이젠 늦었다. 괜히 카즈마 기를 죽여선 안 된다. 지금은 팀워크가 무엇보다 소중하다. 건너온 냇가를 다시 건너야 했다. 고작해야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깊이였다. TV에서 허리도 안 차는 냇물을 누군가가 쩔쩔매며 건넌다면, 오버한다고 낄낄길 비웃었을 것이다. 뚱뚱한 배낭만으로도 중심 잡기가 쉽지 않은데, 빠른 물살은 우리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얼기 직전의 비열한 냉기가 양말까지 벗어 던진 발가락을 찌르듯 후벼 팠다. 굳은살 0%. 물집 풍년의 내 발가락은 이미 기절했다. 뼛속 깊숙이 체감되는 차가움과 딱딱한 자갈들, 며칠간 배터지게 먹어 보겠다며 빵과 통조림으로 꽉 채운 배낭이 나를 같이 물어뜯었다.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안 된다. 빵이 젖으면 안 된다. 젖은 빵은 두고두고 먹을 수 없다. 나는 빵을 위해, 이를 악물고 험한 물살을 빠져나왔다.
--- ‘ 물집의 습격. 발가락은 혼수상태’ 중에서
“젊은 사람들만 밖에 앉는 줄 알았는데, 저분은 나이가 좀 있네요.” 체구가 작고 고개를 흔드는 남자를 가리켰다. “앞을 못 봐서요. 장애인은 안에 들어갈 수 없어요. 좋지 않은 몸이니까.” 웃는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기에 이상하다 싶었더니, 시력을 잃은 사람이었다. 좋지 않은 몸이라니…. 잔인한 표현이다. 나는 감히 그들의 관점이 틀렸다고 말하겠다. 그 좋지 않은 몸은 공평하게 모두에게 웃어 주고 있었다. 그는 좋지 않은 몸일지 몰라도, 공평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공평한 몸이, 좋은 몸보다 신과 더 가까울 것임을 신은 누누이 강조했을 것이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 보아야 할 것을 보아야 한다. 나는 그 자리가 여러모로 죄스러웠다.
--- ‘ 기념품을 사기 전엔 절대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