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며 함께 나눌 사람이 없었다. 벚꽃은 이미 끝물이었다. 꽃이 져 버린 벚나무 가지 끝의 지저분한 분홍빛이 죽은 자의 입술 빛깔을 연상시켰다. 호텔방은 좁고, 스산했다. 지나치게 깨끗하게 정돈된 침대가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머물다 가는’ 곳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나는 또 다시 호퍼를 생각했다. 이번에는 도회적이고 세련된 우울을 그린 작품들이 아니라 호텔방 침대에 속옷차림으로 혼자 멍하니 앉아있는 여자를 그린 1931년작 ‘호텔방(Hotel Room)'이 떠올랐다. 그림 속 여자가 느꼈을 법한 고립감이 온전히 내 것이 되어 돌아왔다. 문득 일본 전통여관인 ‘료칸’에서는 결코 혼자인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혼자 와서 자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기 때문이란다. 모든 방의 구조가 똑같은 대도시의 이 호텔방에서 나 하나쯤 죽어나가도 아무도 모를 거라는 생각까지 들자 갑자기 두려움이 와락 치밀어 올랐다. 엉망진창인 서울의 내 방이 너무나도 그리워졌다.
--- 본문 중에서
그림을 본 사람들이 크리스티나의 뒷모습이 실제 내 뒷모습과 닮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도 하나로 묶은 헤어스타일과, 허리에 끈을 묶은 원피스 차림이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림 속 주인공의 외양이 아니라 내면이 나와 닮았다고 느꼈다. 나는 그녀가 보고 있는 세계의 풍경이 쓸쓸하고 서글플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책 속에서 읽어내는 세계의 모습이 그녀의 세계와 닮아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 그림을 보았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나 크리스티나가 불구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직관적으로는 알 수 있었다. 그림 속 여자에게 무언가 결핍돼 있다는 것을. 지평선을 바라보며 정면으로 바람을 맞고 있는 저 작은 여인의 두 다리처럼 자신들의 마음도 외로움, 고독함, 혹은 쓸쓸함으로 불구가 돼 있다는 사실을. 고통에 대한 공감(共感)만큼 타자와 자신간의 동일화를 가져오는 감정도 없다.
--- 본문 중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했건만 친구 하나 없는 서글픈 현재와, 그냥 고향의 대학에 진학해 교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상경을 고집했던 어리석고 부끄러운 과거와, 앞으로 닥쳐올 대학생활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불안한 미래 등이 떠오르면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곤 했던 것이다. 혼란스럽고, 복잡하고, 너무나도 외로웠던 그 시절의 나는 자주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무릎을 감싸 안은 채 침대 위에 앉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떠올리려 애썼다. 내게 ‘갈매나무’는 때로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시구(詩句)였고, 때로 그리운 가족들의 모습이었고, 때로는 떠나온 고향의 풍경이었다. 보다 확실한 ‘갈매나무’의 심상(心象)을 떠올리기 위해 나는 애썼다. 보다 외로움을 견디기 쉬울 것 같아서였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