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들으면 이제마의 가벼움을 탓하는 소리로 들렸다. 그러나 실은 단지 탓을 하기만을 위한 소리가 아니었다.
"원래 몸이 약한 사람은 더 심하게 앓고 평소 건강하던 사람은 더 빨리 낫는 것처럼 병은 같아도 사람에 따라서 나타나는 반응은 모두 다르기 마련이지. 허나 병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 병을 고치려면 의원 스스로 환자에게 마음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의원을 명의 중의 명의로 쳤고, 의사는 약이며 침을 다루는 기술을 익히기 전에 논어며 맹자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허준 선생이 '의자(醫者)는 반드시 유자(儒者)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 것이 그런 뜻이다. 그러니 마음을 제대로 고쳐 잡지 못한 자네이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것은 수양이 부족한 내 탓도 있다고 보네."
--- p.84
"병이 아니라 사람부터 고쳐야겠네."
언뜻 들으면 이제마의 가벼움을 탓하는 소리로 들렸다. 그러나 실은 단지 탓을 하기만을 위한 소리가 아니었다.
"원래 몸이 약한 사람은 더 심하게 앓고 평소 건강하던 사람은 더 빨리 낫는 것처럼 병은 같아도 사람에 따라서 나타나는 반응은 모두 다르기 마련이지. 허나 병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 병을 고치려면 의원 스스로 환자에게 마음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의원을 명의 중의 명의로 쳤고, 의사는 약이며 침을 다루는 기술을 익히기 전에 논어며 맹자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허준 선생이 '의자(醫者)는 반드시 유자(儒者)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 것이 그런 뜻이다. 그러니 마음을 제대로 고쳐 잡지 못한 자네이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것은 수양이 부족한 내 탓도 있다고 보네."
국운이 쇠퇴한 어려운 시대에 서자로 태어났으나 타고난 총명성으로 일찍이 경서를 통독했고 무예에 능했으며 특이한 지병으로 의학과 유학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1888년 군관직에 등용되었으나 곧 사퇴했으며, 1892년에는 경상남도 진해현감으로 나가 관청의 기강을 바로잡는 데 힘썼다. 그 뒤 1894년 「동의수세보원」을 끝내고 고향에 돌아가 있다가 1896년 최문환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고원 군수에 추천되었다. 짧은 기간 군수의 직책을 수행하다가 스스로 물러나 일생동안 자신이 연구한 의학이론을 임상적으로 확인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열과 성을 다하였다.
이제마는 심오한 철학관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연구로 사상의학(四象醫學)을 체계화함으로써 우리나라 한의학에 새 지평을 열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사상의학이란, 사람의 체질을 오장육부의 대소와 성정(性情)의 차이에 따라 태양인 · 태음인 · 소양인 · 소음인의 4종류로 나누며 같은 병이라도 병증보다는 환자의 체질에 따라 처방을 달리해야한다는 이론으로 임상학적인 방법에 따라 질병의 예방과 치료 및 양생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