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살림 밑천 기특한 맏딸!” 아버지의 그 말은 나를 옥죄는 족쇄가 되기도 했다. 나는 그 말에 꼼짝없이 묶여 기특한 딸이 되어야 했다. 칭찬은 좋은 면 만 있는 게 아니었다. --- p.15
시내와 이어지는 영도다리를 건너오면 대평동과 봉래동 일대 바닷가에는 선박을 수리하는 작은 조선소가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깡깡이 아지매’들은 낡은 배를 수리하거나 새로 페인트칠할 때 배의 녹을 떨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짠 바닷바람에 노출된 배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었고 바닷물에 잠긴 아랫부분에는 따개비나 담치 같은 해양생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런 것들은 배의 속도를 느리게 할 뿐 아니라 쇠를 부식시키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벗겨내고 새로 페인트를 칠해야 했다. 깡깡이 아지매들은 끝이 납작한 끌처럼 생긴 망치로 쇠를 두드려 녹을 떨어낸 다음 쇠 솔로 다시 한 번 더 문질러 남은 녹까지 깨끗하게 털어내는 일을 했다. 수리하는 배의 안과 밖, 구석구석까지 깡깡이 아지매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깡깡이 아지매들은 자신들의 삶에 녹처럼 붙어 있는 가난을 떨어내듯 안간힘을 다해 망치질을 했다. “깡깡깡깡…….” 쇠와 쇠가 부딪쳐 내는 깡마른 그 소리에는 가난한 살림을 붙들고 사는 깡깡이 아지매들의 결기도 섞여 있었고 칡뿌리처럼 감겨드는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기도 했다. “깡깡깡깡 깡깡깡깡…….” 봉래동과 대평동 해안가에는 깡깡이 아지매들의 망치 소리로 하루가 시작되었고 망치 소리가 끝나면 하루가 저물었다. --- pp.47~48
엄마는 마스크처럼 두르고 있던 수건과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을 풀어 몸을 털며 걸어왔다.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 팔에 낀 토시와 장갑을 벗는데 채 떨어지지 않은 먼지 같은 쇳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우야 안 울었나?” 나를 보며 웃는 엄마 얼굴은 흑인처럼 이만 하얗게 빛났다. 정희는 그런 엄마가 낯선지 내 옷자락을 잡고 매달렸다. 가까이 다가온 엄마 몸에서는 녹슨 쇠 냄새와 오래된 페인트 냄새가 뒤섞인 매캐하고도 싸한 냄새가 났다. 엄마를 본 동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버둥거렸다. 젖 먹을 걸 아는 것이다. 엄마는 서둘러 겉옷을 벗고 동우를 받아 안으며 말했다. “저리 가자.” 엄마가 사무실 담벼락 한쪽에 돌아앉아 셔츠를 걷어 올렸다. 온몸에 검은 쇳가루를 뒤집어썼지만 속옷 안에서 나온 엄마 젖 가슴은 닦아놓은 사발처럼 하얬다. 사방에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조선소였다. 여기저기서 용접 불티가 튀고 바닥에는 쇳덩이와 철판이 널려 있었다. 어른 팔뚝만큼 굵은 체인이 벌겋게 녹슨 채 쌓여 있고 독한 화공약품과 페인트와 쇳가루 냄새가 진동하는 곳. 일하는 사람들 외엔 생명체라곤 보이지 않는 삭막한 조선소와 눈부시게 하얀 엄마의 젖가슴은 너무 생경한 조합이었다. 동우는 엄마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정신없이 젖을 빨기 시작했다. 나는 눈길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랐다. 수건으로 가리긴 했지만 동생이 빨고 있는 엄마 젖을 누군가 훔쳐보는 것 같아 가슴이 졸아들었다. 나는 뒤돌아서 엄마를 가리고 서서 바다를 바라봤다.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수평선. 햇살에 부서지는 물비늘. 나는 미간을 찡그려 가늘게 실눈을 떴다. 실눈 너머로 무언가 희끗희끗거렸다. --- pp.53~54
팔 남매 중 유일한 딸이었던 엄마. 치매에 걸리기 전 엄마는 가끔 옛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우리 아버지가 꽃분이라는 고운 이름을 지어줬지. 엄마는 나를 알뜰하게 부려먹기만 하고 공부도 제대로 시켜주지 않고 시집 보냈어. 그 많은 땅 한 뙈기 안 주고. 농사짓는 부모 대신 동생들 돌보며 살림 사느라 국민학교도 마치지 못했어. 그때는 다른 부모들도 다 그랬어. 나는 딸한테 안 그러고 싶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돼야지…….” 엄마는 그런 말을 하면서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인간은 자기가 경험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다 부모님 두 분. 거기다 일곱 동생들까지. 식구가 열두 명이었다, 열두 명! 대식구에 치여 느그 아버지는 홀어머니와 동생 하나뿐이라 식구 단출해 좋다고 결혼했지. 바늘 하나 꽂을 땅도 없는 가난한 살림인 줄은 몰랐지. 인물은 참 훤했지. 노래도 잘했고.” 엄마는 아버지가 다른 여자에게 가버린 뒤에도 마음을 못 접었다. “내가 조금만 더 배웠으면 그년한테 안 뺏겼지.” 엄마와 함께 자식을 다섯이나 낳아놓고 다른 여자한테 가버린 아버지. 아버지는 한 번인가 잠깐 우리를 찾아왔다가 수출선을 타러 나가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나에게 아버지란 말은 무책임이란 말과 동의어였지만 엄마는 치매에 걸리기 전까지도 젊은 시절 의 아버지를 잊지 못했다. 아버지를 대신한 엄마의 노동을 지켜보며 아이답게 자라지 못한 나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응어리졌고 나는 남자라는 인간 전체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 pp.64~65
“옛날에 엄마랑 이모 정말 가난하게 살았어요?” “가난? 글쎄? 그때는 다 그렇게 비슷하게 살았지. 우리 주변에는 다 그런 사람들이 살아서 우리가 특별히 가난하다는 생각은 안 하고 살았지만……, 호호호, 아니네. 우린 좀 더 가난했지. 맞아. 좀 더 가난한 집!” “레벨이 좀 더 높았네요.” “맞아. 레벨이 높았지. 그렇지만 그게 불행과 비례하는 건 아니었어. 가난해도 그닥 불행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 지금 너희들이 사는 거에 견주면 재밌는 사건도 많았고. 너희 엄마 어릴 때 길 잃어버렸던 얘기 아니?” “예? 엄마가요?” “그럼. 까딱했으면 너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걸?” 조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며 돌아오는 길은 혼자 돌아올 때보다 훨씬 마음이 따뜻했다.
1970년대 부산 영도구 대평동, 밖에서 보면 개미굴 모양의 골목 안에 다섯 집이 모여 살았다. 고만고만한 십대들이 형이고 누나고 친구이며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쏟아낸다. 집 나가 있는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해 정은의 엄마는 다섯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깡깡이 일을 한다. 동생 넷을 돌보며 살림을 사는 정은은 국민학교 졸업을 앞두었지만 중학교 진학은 꿈도 꿀 수가 없다. 막내동생 동우가 엄마 젖을 먹어야 할 시간이면 들쳐 업고 엄마의 일터로 찾아가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신문 배달도 한다. 내기를 하다가 폭풍 속에서 파도에 휩쓸려 갈 뻔한 남동생 동식이, 오빠를 따라 나섰다가 길을 잃은 여섯 살 정희, 동생들의 사건, 사고가 끊임없는 것이 정은의 일상이다. 결국 젖먹이 막내동생 동우가 여섯 살 때 잃어버리고 가족 모두가 큰 상처를 안고 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정은과 동생들은 어른이 되고, 자신 몫의 삶을 살아간다. “니는 내처럼 맏딸이라는 말에 묶여 살지 마라.” 사람은 배워야 제대로 대접받고 살 수 있는 기라.” 당신도 맏딸이기에 희생만 해야 했던 어머니는 맏딸 정은이 공부하도록 했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힘들게 공부한 정은은 꿈꾸던 화가가 되었다. 하지만 정은은 가족이든 친구든 객관화시켜 바라보며 문제의 핵심을 명료하게 하기까지 참 오랜 세월을 맏딸이라는 책임감에 눌려 살았음을 고백한다. “내가 자유로우니 동생도 엄마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엄마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1970년대 영도구 대평동 2가 143번지, 그 골목에서 그 시간을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한정기 작가의 빼어난 글과 이야기 솜씨로 이 시대 문학으로 다시 피어났다. 지나간 시절과 사라진 공간을 기록해 남겨야 한다는 사명을 겸손하게 받아들인 한정기 작가의 용기가 독자들을 추억의 시간과 공간 한가운데 불러들여 아련한 감동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