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망을 임대한 모든 대형은행은 프랍트레이딩(proprietary trading, ‘자기자본거래’라고도 하며, 금융회사가 수익을 목적으로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에 자기자본을 투자하는 행위를 말함-옮긴이) 목적으로 케이블망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위탁매매 고객들과 공유하는 행위는 금지되었다. 스프레드 네트워크스 입장에서는 그 제한 조건이 당연했다. 케이블망에 접근 가능한 사람이 적을수록 그 가치가 더 올라갈 테니까 말이다. 그 케이블망의 핵심은 누구나 참여하는 시장의 내부에 수천만 달러의 입장료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사적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는 길길이 뛰었죠.” 크레디트 스위스와 협상을 벌였던 스프레드 네트워크스의 직원이 말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당신들 말이야, 사람들한테 고객 등쳐 먹으라고 하고 있구만.’” 그 직원은 그건 사실이 아니며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라고 설득하려 했지만, 크레디트 스위스는 끝내 계약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반면에 모건 스탠리는 다시 스프레드 네트워크스에 접근하여, ‘문구를 바꾸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그럼 그 제한 조건은 괜찮다는 말씀인가요?’라고 묻자, 그들은 ‘그럼요. 광케이블일 뿐인데요, 뭐’라고 말하더군요. 우리는 모건 스탠리가 자기 고객들에 대해 그럴듯한 거부권을 갖도록 문구를 잘 고쳐야 했습니다.”
_ 34쪽, 1장 ‘은밀한 케이블 매설 작업’
인터뷰에서 로난은 브래드에게 자신이 거래소 안에서 목격한 것들, 즉 나노세컨드를 위한 피 튀기는 경쟁, 토이저러스 케이지, 촘촘한 철망, 거래소 안에서의 자리 싸움, 속도를 조금이라도 빠르게 하는 데 수천만 달러를 쓰는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 등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로난의 설명은 브래드의 머릿속 금융시장 지도에 있던 빠진 조각들을 채워주었다. (…) 이제 미국 주식시장은 속도에 근거해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는 계급사회가 되었다. 가진 자들은 나노세컨드를 위해 돈을 지불했지만, 못 가진 자들은 나노세컨드의 가치를 알지 못했다. 가진 자들은 시장을 꿰뚫고 있었지만, 못 가진 자들은 시장 앞에서 장님이 되었다. 한때는 가장 공공적이고 민주적이던 금융시장이 이제는 사실상 특별한 사람만 초대받는 도난 예술품 특별초대전과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_ 98쪽, 3장 ‘상상을 초월하는 초단타매매의 실체’
로난의 도움으로 RBC 팀은 자신들만의 광통신망을 설계하여 토르를 투자자들에게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었다. 홍보문안은 터무니없이 단순했다. ‘금융시장에 새로운 약탈자가 등장했습니다.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보십시오. 우리에게는 약탈자를 막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있습니다.’
RBC가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과 손을 잡아야 하는가의 논쟁은 끝났다. 브래드의 새로운 문제는 이제 자신이 알게 된 것을 미국의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제 역할은 돌아다니면서 고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죠. ‘누군가 당신 엿 먹이고 있다는 거 아세요?’”
_ 107~108쪽, 3장 ‘상상을 초월하는 초단타매매의 실체’
슈발은 미국 주식시장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브래드를 만나고 난 후에 슈발은 자본주의의 심장인 시장이 조작되고 있다고 확신했다. “당신이 그 문제를 깨닫는 순간, 즉 누군가 당신의 의도를 포착하여 다른 거래소에서 선행매매를 하는 탓에 당신이 바라던 대로 주문을 체결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죠. 생각이 바뀌게 되는 거예요.” 슈발이 말했다. 슈발은 그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정말 열이 받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그런 방법으로 모든 사람들의 은퇴자금을 가로채기 시작했던 거예요. 제 어머니, 아버지 같은 분들이 당하는 거죠. 전 그 못된 놈들과 싸우리라 마음먹었어요.”
_ 130쪽, 4장 ‘시작된 약탈자들과의 전쟁’
그러나 브래드가 수백만 달러의 월가 연봉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그의 동기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브래드를 도와서 새로운 거래소를 설계하고 기반이 될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 사람을 채용하려면 1,000만 달러 정도가 필요했다. 브래드는 자신을 신뢰하는 대형 투자자들이 새로운 증권거래소를 세울 자금을 대리라 기대 내지는 추측했으나, 투자를 받기 위한 프레젠테이션에서 열 중 여덟은 이렇게 물었다. “이거 왜 하려는 거예요?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줬고,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더 큰 부자로 만들어줄 수도 있는 시스템을 공격하려는 이유가 뭐죠?” 브래드 몰래 그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브래드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 브래드가 왜 로빈후드 흉내를 내는지 생각해봤어?”
_207쪽, 6장 ‘‘옳은 일’을 위한 투쟁의 시작’
기술적 사고(technology accident)는 이제 주식시장을 규정하는 특징이 되어버렸지만, 사실 그 어떤 사건도 우연히 발생하는 법은 없었다. 가장 이상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이유는 있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투자자들은 어떤 회사 주식을 주당 30.0001달러에 매수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의아했다. 왜? 소수점 넷째자리까지 붙어 있는 가격이라니, 그런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은 소수점 오른편에 숫자를 덧붙일 수 있는 주문 방식을 요구했고, 그 주문 방식을 이용해서 단번에 30.00달러에 매수주문을 낸 사람들보다 앞에 가서 줄을 설 수 있었다. 그런 주문 방식을 만든 이유에 대해선 거의 설명이 없었다. 그냥 바꾸어버렸다. “그 정도로 투명하지 않은 산업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늘 일깨워주어야만 합니다.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이 정작 투명성은 최대한 낮추길 원한다는 사실도 알려줘야 하고요.” 브래드가 말했다.
_278쪽, 7장 ‘골리앗과 마주선 다윗’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