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에디터가 될 수 있는 시대
1995년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연구소의 창설자 니콜라스 니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의《디지털이다(Being Digital)》라는 디지털 문화의 계몽서가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면서 ‘아톰(atom)에서 비트(bit)로’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다. 또 같은 해 하워드 라인골드(Howard Rheingold)는 《버추얼 커뮤니티(Virtual Community, 가상공동체)》를 통해 지금의 소셜 네트워크 시대를 예견한 듯이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공동체 윤리를 주장했다. 인터넷의 융성과 더불어 인터넷상의 칼럼이라 할 수 있는 블로그가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일본 총무처의 조사에 따르면 2009년 1월 말 일본의 블로그 등록자 수는 약 2,695만 명에 이른다. 미국의 정치계열 블로그 미디어 사이트 〈허핑턴포스트(HuffingtonPost)〉처럼 월간 방문자 수가 4,0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대형 신문사를 위협하는 블로그 사이트도 등장하고 있다. 또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 트위터, 일본에서의 믹시(mixi,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폭발적으로 보급되고 있다. 사용자들이 자기 나름대로 정보를 정리하고 레이아웃을 잡아 마치 개인의 신문이나 잡지처럼 보이게 하는 페이퍼.일(Paper. li, 소셜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같은 사이트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웹상에서 프로와 아마추어 그리고 발신자와 수신자의 경계가 급격하게 허물어지고 있다.
--- p.45~46
편집자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
캐스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재적소 그리고 그 기획을 실현하기 위해 가능한 한 우수한 사람을 모으는 일이다. 우수한 캐스팅에 의해 예상을 뛰어넘는 매력적인 아이디어가 도출되고, 본래의 기획을 초월하게 된다. 편집자는 자신보다도 훨씬 능숙하게 사진을 찍는 사람, 자신보다도 원고를 잘 쓰는 사람, 자신보다도 멋들어지게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의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지시함으로써 처음 아이디어를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사람이다. 거꾸로 말하면 편집자는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수준 높은 문장도 쓸 수 없으며 디자인도 불가능한 사람이다. 스타일링은 물론 헤어 메이크업도 하지 못한다. 즉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편집자에게는 전문적 기능이 없음은 물론, 대형 기자재도 잘 다루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이 못하는 일에 대한 자각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나서 자신보다 훨씬 더 재능 있는 전문가를 간파하고 모은 다음 그들을 지휘함으로써 무슨 일이든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짐으로써 책, 잡지, 웹사이트, 광고, 이벤트 등의 완성도를 훨씬 더 높고 깊이 있게 실현할 수 있다. 이렇듯 편집자는 아무것도 못하면서,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이다.
--- p.88~89
전달했다면 자극하라
나는 미디어를 생각할 때 ‘전달하기만 해서는 전달되지 않는다’는 관점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흔히 ‘몇백만 명의 사람이 보았다’든가 ‘몇만 명에게 DM을 보냈다’ 같은 말들이 미디어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물리적으로는 ‘전달되었다’, ‘연결되었다’인지는 몰라도 그것은 ‘신경이 쓰인다’, ‘주목받고 있다’, ‘공감을 갖고 있다’, ‘자극받고 있다’ 같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내용이다. 오늘날 우리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날마다 접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일일이 의식하며 살지는 않는다. 편집에서 중요한 것은 전달보다도 촉발이다. 그리고 촉발을 위해서는 좋은 이미지가 필요하다. 전달하는 데서 촉발로 전환시키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크리에이터로서는 이미지를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이는지에 따라 성패가 갈리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아는 듯 쉽게 말하고는 있지만 실천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 역시 날마다 괴로워하고 있다. 아니, 괴로움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 p.175
편집이 전부다, 전부!
미국의 유명한 그래픽 디자인의 거장 폴 랜드(Paul Rand)는 ‘Design is everything. Everything!’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디자인은 전부다, 전부!’라는 그의 말처럼 나도 똑같이 ‘편집은 전부다, 전부!’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일관되게 언급했듯이 편집에는 언어와 이미지, 디자인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디자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까지도 손수 다루려고 하듯이, 편집도 단순한 구체물을 초월한 영역까지 직접 다루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Everything(에브리싱)이라는 말은 제법 멋지게 들릴지는 몰라도, 한편으로 그것은 엄청난 노력과 책임이 뒤따르는 말이다. 전부를 다루고 전부를 만족스럽게 끝내는 것은 결코 호락호락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끝마친 이후의 성취감은 더욱 달콤하다. 마지막으로 슈퍼 디자이너의 현장감 넘치는 말을 소개하면서 이 장을 끝마치려고 한다. 문방도구에서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아사쿠사의 아사히맥주 슈퍼드라이 홀 등의 설계로 유명한 프랑스의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의 말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표할 때마다 사람들이 얼마나 흥분돼 있는지 매번 둘러보지만,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