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서 말이야, 지구에 기근이 찾아온다고 해봐."
"기근? ... 너무 비약이 심한 거 아니니? 감이 안 온다."
"야 좀,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없니. 그래서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졌을 때, 난 태연하게 포치를 잡아먹을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어. 물론 나중에 훌쩍훌쩍 울고, 모두를 위해서 희생해 줘서 고맙다, 미안하다면서 무덤을 만들어주고, 뼛조각을 펜던트로 만들어 내내 걸고 다니는, 그렇게 어중간하게는 말고, 가능하면 후회도 양심의 가책도 없이, 정말 태연하게 '포치, 너 정말 맛있더라.' 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어. 뭐 어디까지나, 만약이지만."
가느다란 팔로 무릎을 껴안고 황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츠구미의 모습과, 그녀가 하는 말 사이의 간격이 너무 커서 나는 왠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못돼 먹은 사람이 아니라, 좀 이상한 사람 아니니?"
나는 말했다.
"그래,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항상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는 자기 자신을 막을 수가 없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올바른 사람이면 좋겠다."
--- pp 67~68
아무리 자연이 낳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츠구미의 망가진 육체에 츠구미의 마음이 깃들여 있다는 것은 무척 애처로운 일이었다. 츠구미에게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깊고, 우주에 닿을 만큼 강하게 불타오르는 영혼이 있는데, 육체가 영혼을 극단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그 허망한 에너지가 쿄이치의 눈동자에 있는 것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리라. (...)
집 안에서는 여전히 가족들에게 온갖 앙탈을 부리고, 포치의 먹이를 걷어차고서는 사과도 하지 않고, 아무 데서나 배를 드러내놓고 자면서, 쿄이치와 있을 때의 츠구미는 너무도 행복한 듯 빛나 보여, 어째 삶을 서두르고 있는 듯한 생각마저 들었다. 희미한 불안, 마치 구름 사이로 새나오는 빛처럼, 가슴속이 에이도록 불안해졌다. 늘 츠구미의 삶은, 그렇게 두려웠다. 감정이 육체를 휘두르는 것 같고, 찰나에 생명을 깎아먹는 것 같고, 그리고 눈부셨다.
--- pp 107~110
"그래, 츠구미가 연애를 한단 말이지?"
아버지가 말했다. 그는 다정했다. 이전에는 그 다정함이 그의 인생에 갖가지 걸림돌이 되었지만 생활이 평화로워지니 햇살을 받아 빛나는 산처럼, 침착하고 밝아보였다. 이렇게 보고 있으려니, 만사가 제자리에서 자기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아주 신성하고 좋은 일 같았다.
"그럼요, 하고 말고요." (...)
"그렇게 대단한 연애를 한단 말이니?"
"어디 이모부만 하겠어요. 애인을 숨겨놓고 드나들었으니. 어떻게 되려나 했더니 그 사랑을 관철시켰잖아요."
이 두 사람은 성격이 잘 맞았다. 융통성이 없고 남자다움을 고집하는 타입인 츠구미의 아버지가, 츠구미의 이런 경망스러운 말투에 화를 내며 저녁을 먹다 말고 아무 말 없이 일어나는 장면을 몇번이나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아랑곳 않고 살아온 츠구미지만, 우리 아버지는 우유부단하기는 해도 악의와 선의를 구별할 줄은 알았다. 그래서 츠구미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보기 좋아서, 사랑스러운 기분으로 듣고 있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도중에 포기하지 않는 성격도 그렇지만, 역시 상대가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아버지가 말했다.
"이모도 인내심 많고, 뭐니 뭐니 해도 미인이잖아요. 난 이모가 평생 여기 살고, 이모부는 끝까지 왔다 갔다만 할 줄 알았어요. 그런 게 애첩의 왕도잖아요."
"끝이 보였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솔직한 아버지가 말했다. 철부지 소녀가 아니라, 운명의 여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랑이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빠져 있는 거야, 나이가 몇이든. 그러나, 끝이 보이는 사랑하고 끝이 안보이는 사랑은 전혀 다르지, 그건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 수 있어.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즉 더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야. 지금 우리 마누라를 처음 알았을 때, 갑자기 내 미래가 무한해지는 듯한 느낌이었어. 그러니까, 꼭 합치지 않아도 상관없었을지도 모르지."
"그럼 난 어쩌고요."
라고 나는 농담 삼아 말해 보았다.
"몰론 너도 있었고, 지금은 더없이 행복하다."
아버지는 소년처럼 기지개를 펴고, 바다와 산을 한꺼번에 쳐다보았다.
"아무튼, 더 이상 말이 필요없다, 최고야."
"그렇게 딱 잘라 말하는 단순함이 좋다니까요, 이모부는 나를 고분고분하게 만들 수 있는, 흔치 않는 사람이에요."
츠구미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 pp 1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