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해부학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그는 빨간 천 조각으로 인간들의 음부를 가린 것에 만족했던 것 같다. 그림 속의 아담은 농기구를 들고 밭을 갈 준비를 하고 있으며(타락한 인간은 노동의 의무를 지게 되었다), 슬픈 얼굴의 이브는 이별을 고하는 신을 향해 수줍게 돌아서 있다. 천국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지만, 그 앞에는 엄한 표정의 천사가 지키고 서 있다. 그림에서 화가 난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건 이 천사뿐이다.

아담과 이브가 그들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데서 우리는 조금은 슬픈 아이러니를 느낀다. 그들은 온몸으로 순종의 뜻을 표현하고 있다. 그들을 타락으로 몰고 간 뱀의 제안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 듯한 표정이다. 화가는 이렇듯 단순한 아담과 이브가 바로 인류 전체를 고통과 노동의 세계로 인도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담과 이브로 인해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해야 할 삶이 사악한 뱀의 유혹으로 넘어가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여기서 한가지 약속을 하신다. 머지 않아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그를 통해 인간이 유배생활에서 해방되도록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굳은 표정과 높이 치켜든 칼로 인해 적대적으로 보이는 천사 역시 유심히 살펴 보면 양팔을 벌려 십자가의 형상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이 단계에서부터 이미 다가올 속죄와 그리스도의 탄생, 그리고 인간의 죄를 사하는 그리스도의 죽음까지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다.

『웬디 수녀의 그림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일대기를 40여 점의 아름다운 성화를 통해 이야기하면서, 예수의 탄생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다. 바티칸과 이탈리아 국립 도서관에 보관중인 필사본에서 웬디 수녀가 직접 고른 40여 점의 아름다운 그림은 우리 모두가 익숙히 알고 있는 성서 속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부에서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앞서 일어난 일들, 천지창조와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 수태고지와 성모 마리아의 방문을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 천사에게 예수 탄생의 소식을 전해들은 세 명의 목자들, 동방박사의 경배 등 성탄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3부는 그리스도가 행한 유명한 일화들, 가령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물 위를 걷는 베드로, 최후의 만찬, 유다의 배반 등을 들려주며, 마지막 4부에서는 십자가의 처형, 부활 그리고 예수의 승천과 영원한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추한다. 이 책에 실린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하며 가끔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재미있는 그림들은 신을 찬양하는 데 생을 바친 화가들의 작품으로, 웬디 수녀는 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신학적인 영감을 총동원해 탄생에서 부활에 이르는 예수의 삶을 되짚어보는 행복한 순례의 여정으로 우리를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