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른봄, 새학기가 시작되던 날, 난로를 뗀 추운 교실에서 잔뜩 옹송그리고 있는 새로운 담임반 학생들을 향해 선생님은 모조리 창문을 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너희들이 내년에 중학교에 가게 되면 배우겠지만, 이라는 단서를 붙이며 칠판에 'Boys, be ambitious'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를 쓰고는 몇 번이고 보이스 비 앰비셔스를 외치게 했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큰 뜻을 품어라, 보이스, 비 앰비셔스. 아이들은 찬바람에 우들우들 몸을 떨며 소름 돋은 얼굴로 용기라는, 인생이 중요한 덕목을 배우기 위해, 또한 미래라고 불리는 무형의 문을 향해 소리질러대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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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문을 닫고 다시 누우니 좁은 가게 안은 그대로 관이 되어, 자신은 온갖 부장품들을 거느린 제왕의 주검이 되었다. 백골이 되고, 다시 어린아이가 되었다.그리고 에비가 찾아왔다.(문학과 지성사140p)
그 때부터 자신은 무덤속에는 지상에서 찾을 수 없는 많은 것 들이 있으리라는 환상에 빠지게 된 것 일까 (문학과 지성사 143p) 삶을 사는 것과 삶을 아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문학과 지성가 144p)
죽은 뒤의 세상을 믿는 사람들이 더러 꾸는 꿈 속에서는 판결 받기 전의 혼들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자신들도 모르면서 넓은 길을 가득 채우고 떠밀려 가는 것이 보인다고 했다. (문학과 지성사 153p)
늙을수록 게염과 식탐이 느는 건 인간이나 축생이나 다를 바 없어. 인자는 수탉의 날개를 접어 사납게 밀어젖혔다. (문학과 지성사 129p)
에비는 바람이다가, 물이다가, 어둠이다가, 근원을 알 수 없는 먼 소리이다가, 호롱불빛에 일렁이는 고할머니의 커다란 그림자이다가 , 끝내는 단단히 오그라든 사추리를 차갑게 훑어내리는 손이 되곤 했다. (문학과 지성사 142p)
초파일에 절도 다니고 함서 괴기를 잡아 파니 마음이 껄끄럼하지만 나도 역시 죽어 버러지밥으로 육신 공양이 될게 아니유 (문학과 지성사 147p)
'구원받으셨습니까?'
누군지 떠올릴 겨를도 없이 사내는 관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관희가 난처한 웃음으로 슬그머니 손을 빼내려 했으나 그의 손은 더욱 단단히 얽혀들었다. 현세의 삶에 매인 사람들은 장난기 섞인 동정과 냉소의 표정으로 흘긋거리며 재빨리 지나쳐갔다. (문학과 지성사 154p)
영원히 살리라는 축복과 영원히 죽을 수 없으리라는 저주( 문학과 지성사 154p) 뒤를 쫓아오는 정체 모를 그 무언가에 쫓기듯, 피난 행렬인 양 신경질 적이고 다급하게(문학과 지성사1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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