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목요일에는 친구인 엘리자베스네 집에 놀러 가지만, 이번 주에는 아무런 약속도 잡지 않은 것 같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 전화가 왔다면 내가 적어뒀을 거다. 그녀가 한 말을 메모해놨을 거다. 몇 시에 가서 그녀를 만날지 써놨을 것이다. 난 뭐든 적어둔다.
집 안 여기저기에 쪽지가 겹겹이 쌓여 있거나 붙어 있다. 거기에는 장 볼 물건, 요리법, 전화번호, 약속, 이미 일어난 일을 갈겨써놓았다. 종이에 담긴 내 기억. 뭘 깜박하지 않게 도와줄 쪽지. 하지만 딸은 내가 그 쪽지를 잃어버린단다. 난 그 말도 적어놨다. 그래도 엘리자베스가 전화를 했다면 메모가 하나는 남아 있을 것이다. 전부 잃어버렸을 리 없다. 나는 메모를 하고 또 한다. 테이블과 조리대와 거울에서 다 떨어져버렸을 리 없다. 그런데 내 소매에 쪽지 하나가 끼워져 있다.
‘엘리자베스가 깜깜무소식.’
한 면에 오래전 날짜가 적혀 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 끔찍한 기분이 든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거니까. --- p.24
“여기가 원래는 스테이크 전문점이었잖아요. 기억나요, 엄마?”
헬런이 끼어든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더라. 뭐지, 뭘까, 뭘까…….
“기억 안 나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여기서 아빠랑 자주 만나셨잖아요.”
나는 식당을 둘러본다. 줄무늬가 그려진 벽 옆에 놓인 한 테이블에 늙은 여자 둘이 앉아 있다. 그들은 그들 사이에 놓인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다.
“엘리자베스가 실종됐어.”
내가 말한다.
“스테이크 전문점이었을 때 말이에요. 여기서 점심 자주 드셨잖아요.”
“전화하면 계속 신호만 간다니까.”
“스테이크 전문점이요. 기억 안 나세요? 휴, 그냥 넘어가요.”
헬런이 또 한숨을 쉰다. --- p.30
사과 속에 반쯤 빠뜨리고 난 후 며칠 동안 봉투를 확인했었다. 엄마가 등을 돌리고 있으면 그 틈을 타 신문지들 사이를 들여다보곤 했지만, 잉크가 번져 주소를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봉투 안에 들어 있는 걸 볼 수 없게 돼버렸다는 실망감에 그 편지를 머릿속에서 떨쳐버렸다. 그러고 나서는 거리에서 ‘단서’를 찾아다니고, 몸져눕고, 더글러스를 미행하다 보니 편지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종이가 몇 달 동안 열기를 받아 바짝 마르고 파삭 파삭하게 굽히면서 글자가 마치 불꽃처럼 파랗게 다시 일어난 것이다. 희망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편지에 수키 언니의 소식이 쓰여 있지 않을까? 언니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언니는 그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려고, 아니면 파리에서 모델이 되려고 떠났을지도 몰라. 그 순간에는 이런 생각이 그럴듯해 보였다.
나는 남은 빵과 마가린을 입속에 밀어 넣고 버터 나이프를 집은 다음, 빵을 씹으며 봉투를 째서 열었다. 봉투 안에 든 종이는 끓인 사과 냄새를 강하게 풍겼지만 어쨌든 글은 읽을 수 있었다.
--- p.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