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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지 말고, 인생을 안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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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지 말고, 인생을 안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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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년 0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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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0.69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0.5만자, 약 3.4만 단어, A4 약 66쪽?
ISBN13 9788928611485

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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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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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김수연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졸업. 독일 쾰른대학교 철학부에서 음악학, 음성학, 교육학을 전공하고 음악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현재 인트랜스번역원 소속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4 빼기 3』, TAKEOUT CLASSIC 『바그너』, 『입센』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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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과일조차 씹어 먹을 수 없을 것’이라 여겨 전동 주서기를 선물할 정도라면, 그 사람은 인생 종 친 셈이다. 과일은 시작에 불과하다. 머지않아 점심 저녁까지 기계로 다 갈아서 먹으라고 할 테니까. 그게 세상의 순리다. ‘이유식으로 시작해서 죽으로 끝나는 인생.’ 삶의 본질은 결국 ‘죽’인 것이다. ---p.26

구글은 내 근황을 절대 묻지 않는다. 사실 구글은 그런 것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혹여 그래보여도 진심은 아니다. 내가 어디 살며 직업은 뭐고 어딜 여행했고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게임을 하고 어떤 음악을 다운로드 하는지에 대해선 관심을 보일 수 있다. 가끔 외롭냐고, 내가 살고 있는 인근의 ‘꿈의 그녀’를 찾고 싶냐고 묻는 팝업창이 뜨기도 한다. 그런 팝업 중 어떤 것은 아주 직설적이고 자극적이다.---p.40

결국 나는 묘안을 짜냈다. 물건들을 넣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수납실에 있는 물건 일부를 상자에 담아 소포로 보낸 것이다. 수취인은 나. 소포가 도착할 때까지의 4~5일 동안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몇 번을 이렇게 하다 보니 요령도 늘었다. 소포가 도착할 때 집에 있지 않는 게 현명하다는 것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수취인이 없으면 우체국에서 일주일간 보관해주고, 그 후 다시 발신인에게, 그러니까 바로 나에게 다시 보내준다. 그렇게 되면 나는 소포비용도 물지 않으면서 3주 가까이 공간을 벌 수 있게 된다.---p.59

“그러니까, 환자분은 너무 많이 먹어요. 그것도 건강에 좋지 않은 것들을 많이 먹는데, 그런 반면 활동량은 너무 적어요. 이게 다예요. 당신의 몸이 아이이고 제가 여성가족부라면, 전 당신에게서 양육권을 빼앗았을 거예요.”
“제게서 제 몸을 빼앗아가겠다고요?”
“다른 식으로 말해보죠. 당신 몸은 고아원에서 자라는 게 차라리 더 나아요.”
“고아원이요?”
“예.”
“그럼 제 면접권은 허락되나요?”
“아뇨. 어떤 형태의 접촉도 금지되겠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당신의 몸을 빼앗을 수가 없으니, 당신에게 다이어트나 시키셔 사는 재미나 없애는 수밖에요. 간호사가 운동계획서와 식단을 줄 거예요."---p.89

‘당신의 스팸메일 폴더가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요즘 유행하는 이 말이 정말 맞는 거라면, 나는 내가 봐도 그다지 맘에 드는 사람은 아니다. 만약 내 스팸메일 폴더에 들어 있는 것들이 ‘나’라는 인간에 대한 본질적이고 심오한 진실을 말해준다는 게 사실이라면, 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아주 기괴한 취향을 가진 결함이 있는 이상한 사람, 그것도 아주 이상한 사람이다. 만족스럽고 멋진 성생활을 위한 조언에 열광하는 사람, 포커도박을 좋아하는 사람, 부유한 아프리카 외교관을 도와주려 하는 사람, 매주 새로운 탁상용 의자가 필요한 사람, 특별히 중역용 암 체어에 열광하는 사람,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신형 바 스툴에 환장한 사람……. 하지만 무엇보다 내 관심사 1순위는 바로 ‘깃발게양대’다. ---p.127

어쩌면 이게 여기서 내가 해야 할 바로 그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올해만 해도 9만 2천 종 이상의 책이 독일어로 찍혀 나왔다. 이제 슬슬 누군가가 나서서, 8만 부 정도의 책에 대해 사과할 때가 되었다. 이제 내게는 할 일이 생겼다. 이후 한 시간 반 정도, 나는 내가 고른 쓸데없는 책들 앞에 서서 작가 행세를 하며 사방에서 밀려오는 기자들과 기자 사촌 비슷한 이들에게 그 책들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p.153

아마도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을 ‘멍청이 세대’라고 부를 것이다.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든 멍청이 세대. 아이들이 우리 세대, 그리고 이전 세대, 그리고 그 이전 이전 세대가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는 걸 알아내는 날에는, 우리들은 약한 불에 서서히 구워지는 바비큐 신세가 될 것이다. 그건 빤한 결과다. 편안한 노후를 원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의 지능이 발전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p.171

만약 우울증 관광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온 세상의 우울증 광팬들이 니더작센의 가을을 보기 위해 몰려들 것이다. 이것보다 더 완벽하고 좋은 우울증 패키지 상품은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나처럼 그곳에서 자란 사람은 그곳이 마음에 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거기서 태어난 사람은 이미 ‘니더작센의 가을이 뿌리박힌 니더작센의 영혼’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산이 없는 평지에 살수록 영혼은 더 깊어지고 술도 더 많이 마시게 된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p.199

“핸드폰 없어요?”
“있어. 그런데 여기서는 안 터져.”
“나는 되는데.”
“너한테 핸드폰이 있다고?”
“그럼요.”
기적이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진흙길 위의 장난감자동차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다가간다.
“오 그럼 핸드폰 좀 빌려줄래?”
“엄마가 모르는 사람한테 핸드폰 빌려주지 말라고 했어요.”
“아니, 그러지 말고 제발. 정말 급해서 그래. 2유로 줄게.”
아이가 손을 내민다. ?른 2유로를 꺼내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이가 휴대전화를 꺼내주었다.
“여기요! 내 거는 어디서든 다 돼요!”
아이의 손에 놓인 초록색 호박 모양의 플라스틱 휴대전화를 본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멍해졌다. 아이가 빨간색 단추를 누르자 호박 휴대전화는 “오이 씨 전화 왔습니다!”라고 명랑하게 외쳤지만, 내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p.220

여자 친구가 말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이 겨울 풍경 속에서 우리 둘이 영원히 함께 나눌 수 있는 낭만적인 추억을 만들 절호의 기회라고. 그녀는 로맨틱한 한 마디를 간절히 듣고 싶다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게 있는 낭만이란 낭만은 모조리 짜내려 시도했다. 티끌만큼의 낭만까지도. 긴장해서 가볍게 상기된 표정으로, 더듬대며 말했다.
“지금 여기 내가……. 너와……. 이렇게 추위에 떨며…… 생각해……. 이렇게…… 떨고 있어야 한다면…… 그래야만 한다면……. 그 누구도 아닌…… 너와 함께…… 그러고 싶어.”
휴우~. 여자 친구가 빙그레 웃었다. 나도 웃는다. 이보다 훨씬 나쁠 수도 있었다는 걸 둘 다 잘 알기에.---p.226

스누즈 기능이 있는 알람시계를 마지막으로 선물 받았던 게 적어도 10년은 더 된 듯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스누즈의 제왕이었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스누즈 버튼을 내리치는 일뿐이었으니. 최장기록은 무려 36시간이었다. 사이사이, 그러니까 그 36시간 사이에 한두 번은 너무 깊이 잠이 들어 따르릉 소리를 듣지 못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36시간! 나쁘진 않은 기록이다. 정신적인 면만 놓고 본다면, 그러니까 내 의지만 따져본다면 나는 그보다 더 오래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제기랄, 내 등이 화근이었다. 내 등이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장시간 누워 있으려면 남들과는 완전히 다른 특별한 근육을 가진 등이 필요했던 것이다. 완전히 다른 근육강화 훈련도. 하지만 내겐 그럴 시간이 없었다.---p.245

그 스웨터는 선물 받은 것이다. 그의 아이, 정확히 말하면 아들의 첫 손뜨개 작품이다. 그 스웨터가 특별한 건 맞다. 유감스럽게도…….그 스웨터는 마치 세기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북부 독일의 기와지붕 같다. 군데군데 나 있는 정체불명의 구멍은 볼 때마다 ‘보험이 저런 것도 보상해줄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스웨터 색깔은 일종의 베이지 톤이다. 어두운 베이지라고 할까? 참고로 어두운 베이지라는 색깔 이름은 오로지 토사물 색깔이라고 말하기가 곤란해 붙여진 것일 뿐이다. 어쨌든 어두운 베이지 색이다. 소매는 적어도 10cm는 길고, 넓은 소매통이 커피잔이나 그릇에 자꾸 빠지는 바람에 필립의 소매에서는 하루 종일 커피나 스프 국물이 흘러내린다. 스웨터의 앞판이 뒤판보다 커서 앞쪽 면이 우글우글 울고 있다. 마치 필립이 스웨터 안에 뭘 감추기라도 한 것처럼. 뭔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을, 그러니까 토실토실한 토끼나 두더지 세 마리 정도가 스웨터 아래에서 태극권이나 그 비슷한 것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p.256

시간을 많이 절약해준다는 신기술을 활용하려면 일종의 시간 대출 같은 걸 받아야 한다. 몇 년에 걸쳐 조금씩 갚아나가야 할 많은 양의 마이너스 시간을. 그렇게 해두어도 제품을 쓰다보면 어느 새 시간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 계속해서 시간 대출을 받아야 하니 빚더미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프린터나 내비게이션 같은 물건들을 쓸 때는 특히나 시간 대출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 시간 절약형 전자제품들은 놀랍게도 금융위기를 가져온 미국의 모기지 대출정책을 떠오르게 한다.---p.285

율리아는 조카를 데리고 영화를 보러 갔었단다. 전 세계적으로 뱀파이어 열풍을 일으켰던 베스트셀러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극장판을 보러. 모르몬교도인 스태프니 메이어가 쓴 그 뱀파이어 소설 말이다. 뱀파이어는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매너도 좋고 점잖고 지나칠 정도로 예의바르다. 그는 절대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지 않으며 게다가 혼전순결주의자다. 한마디로 모르몬 뱀파이어다. 율리아는 바로 이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도대체 그럼 뭐야? 결혼 전에는 섹스를 하지 않는 뱀파이어? 끝내주는군! 도대체 사람들이 왜 뱀파이어를 상상해냈는지 알기나 하는 거야? 그게 뭘 상징하는지 알기나 하냐고? 뱀파이어에게 내 목을 내주어야 한다면 적어도 그와……, 그러니까 그와……, 이건 당연한 권리 아닐까? 그러니까 그와……."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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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웃 리히만 씨 이야기’를 제일 재밌게 읽었다. 그는 인터넷이 아니라 공동빌라 마당을 향해 트위터를 한다. 내용이라고 해봐야 “이런 서둘러야겠는 걸”, “저,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요!” 같은 허공을 향한 독백일 뿐이다. 세상의 속도를 좇아가기 벅차 외롭고 초라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 세상에 대고 허세를 부리고 있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토머스 쾨스터(출판평론가)
누군가가 내 사생활을 개그의 소재로 삼는다면 불쾌해지는 게 보통이다. 헌데 호어스트는 예외다. 그의 유머에 인용되는 건 언제나 대환영이다. 근엄한 척 살고 있는 나도, 당신도 실은 결국 찌질한 동지였다는 걸 확인하고 호쾌한 웃음과 함께 큰 위로를 받게 되므로. 우리에게 그런 그가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프랑크 구센(독일의 유명 개그맨)
호어스트 에버스의 글은 가벼운 깃털처럼 유쾌하면서도 인생의 깊이를 담은 철학으로 가득하다. 단연 별 다섯 개!
쥐트도이체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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