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개발주의는 본질적으로 녹색성 혹은 환경주의와 같이 갈 수 없다. 신자유주의로 표방되는 자유시장의 관점도, 개발주의로 표방되는 개입주의 국가의 관점도, 모두 근본적으로 환경을 ‘장기판의 졸’로 본다. 참여정부가 그렇게 많은 진보적 개혁 과제를 추진했지만, 환경 관련 의제(擬制)나 정책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오죽했으면 2003년 말 시민단체들은 추운 광화문 땅바닥에서 ‘환경비상시국’을 선포하고 농성을 했을까 물론 형식적으로 참여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환경주의자가 대거 초청을 받았고, 이를 통해 정부와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여러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개발주의 성향을 띠고 정책 과제가 추진되다 보니 환경주의자들의 문제제기는 늘 ‘환경근본주의’로 곡해되거나 거부되었다.--- p.32 「제1장 새 천년 한국 사회와 환경위기」
정권 초기, 토건적 리더십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났던 프로젝트가 바로 한반도 대운하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는 전 국민적 저항으로 주요 정책의 추진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새 정부는 대운하 프로젝트도 추진을 보류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운하 프로젝트는 이명박 대통령을 특징짓는 토건적 리더십 그 자체였기에 쉽사리 포기되지 않을 것임은 여러 측면에서 분명했다. 대운하 프로젝트는 건설회사 CEO 출신 이명박 대통령이 통치권자로서 꿈을 펼치고 권력을 행사하며 국가 사회에 대한 지배를 관철하는 그 자체였다. 이것은 이명박 정권에 대운하 프로젝트가 그람시(Antonio Gramsci)가 말한 ‘헤게모니 프로젝트(hegemonic project)’와 같음을 의미했다. 대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대운하는 서울시장으로서 성공 신화를 거둔 ‘청계천 복원’의 정치적 효과를 대권을 위한 것으로 확장해내는 ‘토목 정치적 프로젝트’일 뿐만 아니라 국민적 논란을 정치적 지지로 이끌어내는 ‘담론 정치적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대운하 공약은 실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었다.--- p.101 「제4장 이명박 정부의 신개발국가화」
이렇듯 한국과 아일랜드 모두 그린 홈이란 용어로 녹색 바람을 일으키지만 그 방식과 내용, 주체는 너무나 다르다. 아일랜드의 그린 홈은 가정 단위의 일상생활과 가족 관계를 통해 녹색가치를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그런 만큼 주택과 같은 물리적 시설의 개조가 아니라 생활양식의 변화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한국의 그린 홈은 친환경적 주택을 공급하면서 경제성장에 보태려는 것이지만, 아일랜드의 그린 홈은 삶 그 자체를 온전히 지키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그린 홈은 첨단기술을 새롭게 개발하고 친환경적 자재를 생산한 뒤 토지를 조성하고 건축물을 신축하는 것으로 구현된다. 때문에 자재의 생산, 건축물의 신축, 건축물의 이용, 건축물의 해체 등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에서 에너지 총사용량은 결과적으로 더 늘어난다. 이에 따라 이산화탄소 발생량도 급격히 늘어난다. 반대로 아일랜드의 그린 홈은 추가적인 에너지 투입과 사용을 전제하는 새로운 건축 및 개발 행위와는 전혀 무관하다. 오히려 기존 건축물의 이용 과정에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또한 친환경적인 것으로 대체하며 근본적으로 환경에 부하량을 덜 주는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을 전제로 한다.--- pp.155-156 「제7장 녹색 없는 녹색성장과 녹색담론」
모든 길은 경제적 융성으로 모아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모든 걸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믿음이 마치 진리와 같이 추앙되고 있다. 이러한 믿음의 확산과 함께 한국 사회는 언젠가부터 시장이 삶의 전반을 지배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를 ‘시장지배사회’로 부를 수 있다(조명래, 2001). 시장지배사회에서는 삶 전반이 자유경쟁이란 허울로 작동하는 승자 독식의 정글법칙에 따라 배열될 뿐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환경의 모든 요소가 상품화되어 시장거래 속으로 편입된다. 이는 돈과 자본의 논리가 삶의 내부는 물론이고 그를 둘러싼 외부환경 전반으로 파고들어 세상을 온통 허구적 상품의 가치사슬로 엮어놓음을 말한다. 그 결과 크게는 지구 생태계를 구성하는 거시적 단위(강·숲·대기·바다 등)가 상품으로 개발되어 훼손되고, 작게는 생명을 구성하는 미시적 단위마저 상품(장기이식, 체세포를 이용한 장기배양, 유전자 조작 등으로 상품화)으로 조작되고 교란되고 있다. 시장지배사회의 출현은 인간 사회의 시장화를 넘어 자연의 세계마저 시장화하고, 이는 곧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위기의 본질을 구성한다.--- pp.241-242 「제11장 환경위기 시대에 다시 읽는 환경사상가, 칼 폴라니」
녹색토건주의 시대 지방 환경정책의 위축은 지방자치단체 환경행정의 일시적 위축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개발주의가 늘 팽배한 지방자치에서 명맥만 유지하는 환경정책의 위축은 개발의제가 녹색의제를 대체·지배하는 현상으로 인해 더욱 두드러진다. 녹색으로 분칠한 경제 우선 성장정책과 토건식 개발정책이 최고통치권자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되면서 지방의 환경정책도 ‘녹색토건주의 쓰나미’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녹색의제를 대체하는 개발의제는 녹색(환경)을 덧씌운 개발의제의 모습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지방자치의 정책의제로 유행하는 친수구역 개발, 하천복원, 탄소저감 도시정비, 에코 홈, 에코 빌딩, 에너지 효율적인 기기 사용, 생태관광, 생태벨트, 도시농업 등이 비근한 예이다. 이들 의제에 정치적인 힘이 실리면, 전통적인 환경의제(예: 폐기물관리, 수질관리, 생물종 다양성 보전 등)는 상대적으로 약화되거나 경제과 개발논리에 복속되어 변형된다.
--- p.328 「제15장 녹색 공공영역으로서 지방 환경정책의 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