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약대에서 약제학을 전공하여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2006년부터 2012년 5월까지 특허청에서 심사관(약무 사무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세한국제특허법률사무소의 변리사로 새로운 인생을 열고 있다. 각종 언론매체에의 기고 등을 통해 클래식 전문 음악칼럼니스트로도 지평을 넓혀가고 있으며 현재 풍월당, 대구 현대백화점,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 시리즈 등에서 음악해설과 강의를 진행 중에 있다. 저서로는 『김문경의 구스타프 말러』『클래식으로 읽는 인생』『천상의 방랑자-슈베르트』가 있다.
지휘에서 칸타빌레를 실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휘봉으로는 음의 시작점만을 알려줄 뿐이며, 칸타빌레는 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채워 넣는 작업을 의미한다. 즉, 지휘봉의 운영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테크닉이다. 칸타빌레는 존재의 DNA와 같은 것이다. 음악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으로, 레가토(악보에서 둘 이상의 음을 이어서 부드럽게 연주하라는 말)에 대한 감수성과 멜로디에 대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휘에 있어 궁극적인 지향점인 것이다.---p.9
카라얀의 화려한 지휘가 코스모폴리탄적인 매력을 표방한다면 카를 뵘(Karl Bohm, 1894~1981)의 지휘는 오스트리아 전통의 유고한 뿌리를 상징한다. 뵘은 악보의 범위 안에서 모든 음표에 충실해지려 했다. 카라얀이 오케스트라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바이올린 파트를 갈고 닦는 데 온 정성을 쏟았다면 뵘은 오히려 제2호른이나 비올라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 악기군의 세공에 열을 올렸다. 또한 리허설에서 부정확하게 얼버무리는 연주는 뵘의 면박을 면치 못했다. 그의 지휘철학은 “8분 음표는 8분 음표로 연주하고 8분 쉼표는 8분 쉼표 만큼 쉴 것.”으로 다소 따분한 것이었지만 공연은 늘 근사했다.---p.36
일본에서 예브게니 므라빈스키는 주로 ‘므라 총통’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경고하겠어요. 몇 사람이 지금 지시를 정확히 지키지 않는군요.”라고 말하는 리허설 영상의 살벌한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지휘자라기보다는 전쟁사령관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실수를 반복했다가는 시베리아에 끌려갈 것만 같은 섬뜩한 긴장감이 감돈다. 므라빈스키의 지휘봉은 정확하며 요점만 간결하게 전달한다. 과장된 지휘 자세나 퍼포먼스적인 요소는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지휘봉에 ‘찰싹’ 달라붙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은 정예부대요, 단원들은 고난도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원인 셈이다.---p.48
지휘자로서 번스타인의 미덕은 모든 음표에 드라마를 부여한다는 데 있다. 그의 음악에서 공허한 추상성이란 것은 결코 허락될 수 없다. 번스타인의 말러의 연주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음표 하나하나에 작곡가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고 우리에게 늘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다. 어떤 작곡가의 음악이든 철저하게 ‘레니화’ 되는 과정을 거친다.---p.79
일반적으로 바로크 음악의 감상은 온몸을 관통하는 듯한 전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바흐나 헨델의 음악이 좋다고 해도 베토벤이나 말러 교향악의 웅장한 음향을 통한 직관적인 짜릿함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상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바로크 음악은 소우주 같은 음들의 조화를 통해 지적유희를 수반하는 감상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카를 리히터(Karl Richter, 1926~1981)가 지휘하는 바흐 칸타타 BWV 106 「악투스 트라지쿠스」를 듣는 순간, 그러한 선입견은 완전히 깨져버렸다. 첫 음부터 끝 음까지 집중하여 모든 잡념을 버리게 되고 음악 속에 자아가 용해되어 버리는 진정한 몰아의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이토록 ‘날카로운 첫 키스’와도 같은 영적 체험을 통해 그는 오래도록 바흐 음악의 전범으로 기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