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심해지는 말더듬이 버릇을 큰일이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에 올라가자 곧바로 언어장애아를 위한 무료 상담실에 보내 이것을 교정해주려고 했다. 이리하여 매주 일요일 오전, 나는 멀리 떨어진 다른 초등학교에 개설된 ‘언어 교실’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언어 교실은 결코 실용적인 발성법을 전수해주지 못했다.
수업이 시작되면 강사는 3분 남짓 간단한 훈시를 늘어놓았다. 고대 그리스의 데모스테네스는 어린 시절에 말더듬이였지만 이를 끈기 있게 극복해 저명한 웅변가가 되었다. 항상 똑같은 이야기였다.
그 다음은, 말더듬이 아동들을 별실에서 기다리게 하고 순서대로 한 사람씩 연구실로 불러 임의의 책을 낭독시키고 그것을 열심히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했다. 아마도 학회 발표용의 샘플인지 뭔지가 될 것이라고 어린 나름대로 상상했었다.
우리를 의자에 앉히고 녹음기의 스위치를 누르며 “자, 시작!”이라고 알리는, 그저 그것뿐이었다. 자신의 추한 말더듬이 소리가 기록되는 데 대한 수치심, 쌓여가는 자기혐오만이 그 교실에서 맛본 모든 것이었다. --- p.94
내가 처음 그를 발견한 것은 올해 초봄이었다. 이 직장으로 전근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막 새로 들어온 처지였기 때문에 나는 하루하루 긴장한 상태에서 모니터를 확인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박스에 들어왔다. 인접한 빌딩과의 연락 통로가 있는 8층이었다. 그가 가는 층은 사무실이 있는 26층. 시간으로 치면 20초 남짓한 여유가 있었다.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는 자동문을 향해 그는 돌연 물구나무를 섰다. 나는 앗, 하고 생각했다. 가슴에서 수첩이며 볼펜이 우수수 떨어지고 넥타이는 뒤집혀 충혈된 그의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그는 한참 동안 그 자세로 정지하고 있었지만, 이윽고 천천히 몸을 반듯하게 세우고 소지품을 주워 가슴팍 호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문이 열릴 즈음에는 완전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로 내 눈을 의심할 만한 광경이었다.
두 번째로 봤을 때의 그의 퍼포먼스는, 그걸 아마 코사크댄스라고 하던가, 팔짱을 끼고 쪼그려 앉은 자세로 다리를 한쪽씩 번갈아 앞으로 뻗었다 내렸다 하는 춤이었다. 나는 혹시 나 이외의 누군가가 이 모니터를 지켜보는 건 아닌지 슬쩍 주위를 확인하고 다시금 화면에 호기심의 시선을 던졌다. 입의 움직임으로 봐서는 박스 안에서 “호이, 호이!”하는 구령까지 붙이는 기색이었다. 모니터 화면이 흔들릴 만큼 그 댄스는 격렬했다. 중간에 문이 열리고 다른 사람이 올라탔기 때문에 그는 순식간에 보통 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내가 내심 크게 실망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 p.114
어렸을 때, ‘도치리나 키리시탄’이라는 말을 걸핏하면 입에 올리곤 했다.
이것은 내가 더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렬의 하나였다. 종종 사람을 흠칫 놀라게 하는 이 아홉 글자의 말은, 발음하는 나에게 모종의 기묘한 쾌락을 가져다주었다.
“도치리나 키리시탄!”
진지한 얼굴로 “도치리나 키리시탄!”이라고 말해버린 직후의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상쾌함.
“도치리나 키리시탄!”
대체 이건 뭘까. 정말로, 몇 번이고 거듭거듭 말해보고 싶어지니.
이것과 똑같은 효과를 몰고 오는 말로는,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나,
“요한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등이 있다.
아아,
“요한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 p.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