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 차림으로 갈아입은 이기중 회장 앞에 오성일에 이어 이번에는 중년 남자 하나가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중년 남자는 놀랍게도 강 형사의 상관인 민 계장이었다.
"좀 있으면 다 모일 거요. 준비하고 있다가 내 지시를 받는 즉시 출동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이번 일 잘 마무리되면 큰 상이 내려질 거요."
"감사합니다."
"더 필요한 거 있소?"
"됐습니다. 조치해 주신 것으로 충분합니다."
"수시로 상황을 보고해 주시오. 어쩌면 군 병력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예에?"
민 계장이 크게 놀라 되물었다.
"구, 군 병력이라뇨?"
"보통 놈들이 아니라 만일을 대비하자는 거요."
"…… !"
--- p.193
그림 같은 봄의 정치를 품고 있는 한강이 거기 있었다. 그러나 오늘따라 한강유람선마저 서정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지금 서정이 바라보고 있는 한강 유람선. 그 유람선 갑판 끝 난간에는 한 관광객이 벚꽃이 반발한 의사당로를 아득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의도를 뒤덮으며 숨이 막히도록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벚꽃 숲에서 한순간 알 수 없는 절정切情의 비장悲壯을 그는 느꼈다. (2권 p304.)
--- p.
'겨울을 이겨낸 야생화는 4월부터 꽃이 피지. 그래서 4월은 시작과 희망의 의미가 있단다. <중략> 그래서 난 야생화를 좋아해. 아버진 말이다. 이렇게 꽃씨를 뿌릴때마다 이 꽃씨가 내 삶의 흔적 같이 생각된단다. 그러니까 나는 이 꽃씨를 통해서 내 삶의 흔적을 남기는 셈이지.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다른 곳으로....' 아! 꽃씨를 뿌리는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누구였더라. 언제였더라.... <2권35p>
'솔직히 그건 잘못된 충성, 과잉 충성이었네. 우리의 역사, 따지고 보면 그런 과잉충성의 역사가 아닌가. 알아서 기고 알아서 싸우고, 알아서 덮어 버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 누군들 그러지 않겠나.'
과잉 충성. 자고로 그 과잉 충성이 문제였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멀쩡하던 사람도 완장만 채워주면 저지르는 일이었다. 심지어는 데모데열의 학생조차 전경이 되고나면 생가깅 달라진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과잉충서의 가해자였을까. 저지르는 사람도 덮어주는 사람도 죄의식은 커녕 당연한 일로 생각해 왔다. 이런 과잉충성에 떳떳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되겠는가.... (2권 17 p.)
그래 그가 살아 있었어. 살아 있던 거야. 그는 나 때문에 살아 있을 수 밖에 없었어. 그는 계속 내 곁에 있어 온 거야.... 그녀의 얼굴 가득 환희가 피어 올랐다. 벅차 오는 감정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여 두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그리고 한강 쪽으로 몸을 돌렸다. 표정을 감춰야 했던 것이다. 어느새 스녀의 손이 블라우스 속의 목걸이를 만지고 있었다. 아!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어......
갑자기 눈앞이 물 속 처럼 어른 거렸다. 주르륵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 내렸다. 수영씨 사랑해요...
한 줄기 강바람이 그녀의 긴 머리를 날렸다. 꽃들이 일제히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넓은 꽃밭에 꽃물결이 일었다. 일렁이는 꽃물결 속에 그녀는 그렇게 서 있었다. <2권 315p>
--- p.17
(p.304)
그녀는 자신에게는 결코 행복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려니 자연 가슴 한 구석이 아려 오기 시작했다. 자기도 모르게 아린 가슴에 손을 얹고 멀리 한강을 따라 내려가고 있는 유람선을 바라보았다. 그림 같은 봄의 정치를 품고 있는 한강이 거기 있었다. 그러나 오늘따라 한강유람선마저 서정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지금 서정이 바라보고 있는 한강 유람선. 그 유람선 갑판 끝 난간에는 한 관광객이 벚꽃이 반발한 의사당로를 아득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의도를 뒤덮으며 숨이 막히도록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벚꽃 숲에서 한순간 알 수 없는 절정切情의 비장悲壯을 그는 느꼈다.
(p.314)
귀신에 홀린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서정이 남자를 돌아보았다. 남자가 막 인파들 속으로 섞여들고 있었다. 아…… 저 뒷모습……. 그였다. 틀림없이 그였다. 그녀만이 느낄 수 있는 그만의 체취가 그의 뒤에 남겨져 있었다.
휘청. 순간적인 현기증으로 그녀가 잠시 몸을 가다듬지 못했다. 애써 몸을 가누고 난 그녀가 그의 체취를 따라 죽어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이미 사람들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한 줄기 회오리바람이 그녀를 휘감아 돌았다. 그리고 그 바람은 의사당로로 휘돌며 올라갔다. 그것은 계속하여 순백으로 뒤덮인 벚꽃나무 위를 휘돌아 오르며 눈 내리는 날의 요술처럼 꽃보라를 일으켰다. 그녀의 눈길이 휘돌아 오르는 꽃보라에 머물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가 한 말들이 꽃보라처럼 맴돌았다. <생략>
그녀의 얼굴 가득 환희가 피어 올랐다. 벅차 오는 감정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여 두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그리고 한강 쪽으로 몸을 돌렸다. 표정을 감춰야 했던 것이다. 어느새 그녀의 손이 블라우스 속의 목걸이를 만지고 있었다. 아! 사랑한다는 말도 못 했어. 갑자기 눈앞이 물 속처럼 어른거렸다. 주르륵,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영 씨, 사랑해요……. 한 줄기 강바람이 그녀의 긴 머리를 날렸다. 꽃들이 일제히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넓은 꽃밭에 꽃물결이 일었다. 일렁이는 꽃물결 속에 그녀는 그렇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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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4)
그녀는 자신에게는 결코 행복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려니 자연 가슴 한 구석이 아려 오기 시작했다. 자기도 모르게 아린 가슴에 손을 얹고 멀리 한강을 따라 내려가고 있는 유람선을 바라보았다. 그림 같은 봄의 정치를 품고 있는 한강이 거기 있었다. 그러나 오늘따라 한강유람선마저 서정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지금 서정이 바라보고 있는 한강 유람선. 그 유람선 갑판 끝 난간에는 한 관광객이 벚꽃이 반발한 의사당로를 아득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의도를 뒤덮으며 숨이 막히도록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벚꽃 숲에서 한순간 알 수 없는 절정切情의 비장悲壯을 그는 느꼈다.
(p.314)
귀신에 홀린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서정이 남자를 돌아보았다. 남자가 막 인파들 속으로 섞여들고 있었다. 아…… 저 뒷모습……. 그였다. 틀림없이 그였다. 그녀만이 느낄 수 있는 그만의 체취가 그의 뒤에 남겨져 있었다.
휘청. 순간적인 현기증으로 그녀가 잠시 몸을 가다듬지 못했다. 애써 몸을 가누고 난 그녀가 그의 체취를 따라 죽어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이미 사람들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한 줄기 회오리바람이 그녀를 휘감아 돌았다. 그리고 그 바람은 의사당로로 휘돌며 올라갔다. 그것은 계속하여 순백으로 뒤덮인 벚꽃나무 위를 휘돌아 오르며 눈 내리는 날의 요술처럼 꽃보라를 일으켰다. 그녀의 눈길이 휘돌아 오르는 꽃보라에 머물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가 한 말들이 꽃보라처럼 맴돌았다. <생략>
그녀의 얼굴 가득 환희가 피어 올랐다. 벅차 오는 감정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여 두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그리고 한강 쪽으로 몸을 돌렸다. 표정을 감춰야 했던 것이다. 어느새 그녀의 손이 블라우스 속의 목걸이를 만지고 있었다. 아! 사랑한다는 말도 못 했어. 갑자기 눈앞이 물 속처럼 어른거렸다. 주르륵,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영 씨, 사랑해요……. 한 줄기 강바람이 그녀의 긴 머리를 날렸다. 꽃들이 일제히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넓은 꽃밭에 꽃물결이 일었다. 일렁이는 꽃물결 속에 그녀는 그렇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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