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역시 오랜 세월 묵주기도를 그저 습관적으로 바쳐 왔습니다. 그저 열심히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만 반복하며 기계처럼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입으로는 열심히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곳저곳 정처 없이 돌아다닌다거나 이러저러한 잡념들로 가득 찰 때가 많았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어 기도의 방향을 살짝 틀어봤습니다. 각 신비, 각 단에 해당되는 복음구절을 머릿속에 그려가면서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묵주기도를 드렸더니 한 가지 특별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묵주기도와 함께 예수님의 생애, 성모님의 생애를 자주 묵상하다 보니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현실이 견딜만한 날들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겪으신 고통에 비교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고통스러운 현실, 마음에 들지 않는 내 삶에 대해서도 조금씩 ‘예’라고 대답할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상처투성이인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나 자신은 물론 이웃들을 좀 더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 p.36~37 ‘묵주기도, 성모님과 예수님 일생을 묵상하다’
연도는 장례식장에서만 바치는 기도가 아닙니다. 꼭 제사상 차려놓고 바치는 기도도 아닙니다. 꿈속에서조차 그리운 그 사람을 위해서, 살아생전 해드린 게 너무 없어서 송구한 그분을 위해서,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부터 나는 그를 위해서 어디서든, 언제든지 바칠 수 있는 좋은 기도가 연도입니다. 연도를 바치면서 우리는 하느님과 성인성녀들, 그리고 먼저 떠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연도를 통해 나약한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연도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연도는 우리를 아주 간단하고 효과적인 피정으로 인도합니다.
--- p.47 ‘연도, 먼저 떠난 이들을 위한 기도’
언젠가 꽤 위중한 환자에게 병자성사와 봉성체를 거행하기 위해 한 병실을 찾았습니다. 그날따라 교통체증이 무척 심했고, 또 길을 잘못 찾아 헤매다가 많이 늦었지요. 그리고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어서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속전속결로 병자성사를 집전했습니다. 그리고 재빠르게 영성체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엄청 바쁘고 여유 없는, 그래서 무척 성의 없어 보이는 저에 비해 환자의 모습은 정말 진지했습니다. 엄숙하다 못해 거룩해 보였습니다. 마치 시가 수억의 다이아몬드 반지라도 받듯이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정성껏 성체를 손에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이 세상에서 마지막 예식을 행하듯이 진지하게 성체를 영했습니다. 이어서 눈을 감고 깊은 침묵과 함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1분, 2분, 3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대충 성사를 거행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 p.89~90 ‘미사, 가장 훌륭한 기도’
언젠가 성대한 성탄 전야 미사가 끝나고 행사에 오신 분들이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저 역시 서둘러 행사 자리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제 시선이 성당 제대 앞에 마련된 구유에 머물렀습니다. 작고 소박하지만 정성껏 마련된 성탄 구유, 그 안에 모셔진 아기 예수님, 마리아와 요셉, 목동들, 동방박사들, 가축들…. 저는 갓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홀로 남겨두는 것에 대한 송구스러움에 발길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아무도 없는 캄캄한 성전 성탄 구유 앞에 홀로 앉았습니다. 2천 년 전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침묵 가운데 편안한 자세로 앉아 한 인물 한 인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좋은 묵상기도가 되더군요.
--- p.145~146 ‘구유 앞에서 드리는 묵상기도’
청원기도를 드릴 때 내 위주의 기도를 탈피하라고 배웠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는 기도, 개인에 앞서 공동선을 위한 기도를 바치라고 배웠습니다. 수험생인 내 자녀를 위해 기도하기에 앞서 수험생 전체를 위한 기도, 고생하는 교사들을 위한 기도, 교육 제도와 관련된 우리 모두의 회개를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렇게 큰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성숙한 기도를 어여삐 보시고 필요한 부분을 넘치도록 채워 주실 것입니다.
--- p.159 ‘수험생을 위한 기도’
‘이웃을 위한 기도’와 관련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열심히 이웃을 위한 기도를 바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웃을 위한 기도가 단순히 입술로만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골방 안에서, 기도문 안에서, 성전 안에서 드리는 이웃을 위한 기도로는 부족합니다. 이웃을 위한 기도가 이웃의 깨어지고 부서진 삶, 그들의 아픔과 상처 속으로 스며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위한 기도가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의 발걸음이 이웃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현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아픈 현실 안에서 그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노력을 통해 이웃을 위한 기도는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 p.180 ‘이웃을 위한 기도’
기도는 우리들의 구체적인 일상생활 안에 하느님을 위한 작은 공간 하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는 동료 인간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웃들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 내게 상처 준 사람을 관대하게 용서하는 것, 나그네를 너그럽게 맞이하고 후하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곧 기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리와 정의, 공동선을 위해 헌신하는 삶이 곧 기도입니다. 결국 최선의 삶이 최선의 기도인 것입니다.
--- p.257 ‘바쁜 일상 안에서 바치는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