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다니기 전, 다시 말해서 시계의 마법을 알기 전에는 시간이 유동적이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어제, 내일, 일곱 시…… 이 모든 것들은 단지 이름일 뿐, 진짜 의미는 붙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수염이 텁수룩하고 모자를 쓰고 날카로운 인상에 얼굴을 찡그린 남자의 얼굴을 ‘어제’라는 시간으로 알았었다. ‘내일’은 반쯤 뒤돌아선, 눈이 크고 반짝거리는 여자 어른이었다. 그리고 ‘일곱 시’는 초록색 옷을 입은 쾌활한 장난꾸러기 남자아이였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시간은 얼어붙기 시작했고, 앞으로 누구나 진실을 깨닫고 증오하게 될 거짓된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숫자에 복종하는 법을 배운다. 자기를 가둔 감옥의 철창을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물론 이 철창은 상상으로만 존재할 수도 있다. 감옥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문제는 존재한다고 믿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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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나는 툭 하면 달에 가 있었다. 셀린느 이모는 내가 멍하게 공상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머리를 후려갈겼다. 학교 담임선생은 이모보다 너그러웠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훨씬 더 지랄 같았다. 웃기는 노랫가락에 내 이름을 집어넣어서 부르거나, 내 귀에 대고 ‘딱’ 소리가 나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살아 있는 세계로 돌아온 걸 환영하네, 미셸 군.”
그 말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그때는 정말 몰랐다. 내가 볼 때는 분명히 틀린 지적이었다. 내가 공상 속을 헤매던 그 장소는, 선생이 나를 불러낸 우중충한 회색빛 교실보다 훨씬 밝고 생기 넘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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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순수함을 중립적이고 비감각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순수함에도 감각이 동반될 수 있다. 심지어 엄청나게 감각적일 때도 있다. 단지 사람들이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단어가 없고, 순수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이것이 모든 사람들이 다 경험하는 어떤 감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뿐이다. 순수함은 눈이 머는 것과 같은 것이다. 눈이 멀면, 눈이 먼 대신 다른 모든 감각 기관의 기능은 최대로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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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럽에는 철학자들이 넘쳐났어. 모두 인생과 세상에 대한 자기 이론을 펼쳤지. 하지만 루소는 그 사람들과 달랐어. 모든 문제들을 다 쳐내고 ‘왜 사람들은 불행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던 거야. 그리고, 사람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순수성, 순수한 것과의 교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해답을 얻었어. 그는, 동물은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어. 우아한 야만 동물이었던 원시인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았어. 불행은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어. 진보, 도시, 돈 등과 함께 불행이 시작된 거야. 루소가 한 말은, 이런 것들을 모두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갈 때 인간이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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