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그의 본명은 변영복(卞榮福)이었는데 나중에는 영로(榮魯)라는 이름을 주로 썼고, 회갑줄 시기였던 1958년 정식 개명 관련 소송을 내서 변영로로 전격 개명하였다. 호는 수주(樹州)이며 한성부 남서 회현방에서 출생하였고 원적지였던 경기도 부평도호부 하오정면 고리동(지금의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 313번지)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경성 중앙학교(지금의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중앙학교, 이화여전 등에서 교편 생활을 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건너가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주립 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공부하였다가 끝내 중퇴하였다. 신문학 초창기에 등장한 신시의 선구자로서, 압축된 시구 속에 서정과 상징을 담은 기교를 보였다. 민족 의식을 시로 표현하고 수필에도 재능이 있었다. 광복 후 성균관대학교·해군사관학교 교수 등을 지냈으며, 대한공론사 이사장으로 영자 일간지를 발간하였다. 1951년 제2회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고, 1955년 제1대 한국 펜클럽 회장에 선출되었다. 1961년 3월 14일 인후암으로 사망하였다.
작품 대표작으로 〈논개〉, 〈사벽송〉 등이 있고, 수필집 《명정 40년》 등이 있다.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