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는 교직에 몸담을 무렵부터 학생들 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게을렀나 봅니다. 그 소망은 자꾸만 뒤로 미루어지고, 은퇴를 앞둔 이제야 실천에 옮겨가고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나 제자들과 이야기하고, 사진으로 담아내고, 그러면서 함께 사진을 찍는 즐거움이 작업 내내 강물처럼 넘쳐났습니다. 이제 여기 그 모습을 내려놓습니다.
누구보다 진한 감동을 주는, 용기 있고 당당한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여기 내려놓습니다. 그래요, 여기는 인천혜광학교입니다. 인천혜광학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지요. 저는 이곳에서 아이들과 스물다섯 해를 보냈습니다. 그 사이 선생님도 학생도 바뀌고 건물은 높이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단 하나 있지요.
이곳은 여전히 시각장애학생들이 모여 꿈을 쏘아 올리는 희망의 우듬지라는 점입니다. 그 우듬지 끝에서 전 아이들의 손가락을 일일이 셔터에 대주며 세상을 응시하게 하고, 아이들은 꿈을 인화해 냅니다.
돌아보니 지난해 5월은 우리에게 특별한 감성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제자들의 꿈 이야기를 담은‘잠상, 나 드러내기’란 제목의 사진전을 열었기 때문이지요. 3년간 틈틈이 제자들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인천과 서울에서 전시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불편한 자신의 모습과 꿈을 당당하게 밝히고 드러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 우린 해 냈습니다. 세상과 중화되기 위한 조심스러우나 거대한 우리 학생들의 나 드러내기‘보폭’이지요. 감사하게도 우리는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임태형 감독에 의해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 되어 편집중인‘안녕, 하세요!’가 9월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될 예정입니다. 모두 자신을 세상에 드러낸 결과이지요.---프롤로그 중에서
꿈이 주전자속 물처럼 보글보글 끓어 넘치던 아이,
종경이가 하늘나라로 갔다.
천천히, 뒤뚱뒤뚱 지나가던 걸음걸이가 자꾸만 떠올라
고개를 흔들어 애써 지워 본다.
하도 느려서, 기다리다 밥 다 식는
그 종경이가 떠났다.
영국 BBC방송을 즐겨 들으면서
동시 통역사를 꿈꾸던 아이.
꿈을 키우며 그 행복에 젖어‘난닝구’바람으로 춤이라도 추고 싶어 하던 아이, 탁종경.
굼떠서 모두가 움직인 뒤 자리를 뜨던 네 모습을
어찌 잊을까, 날마다 잔상처럼 아른거릴 것인데….
그 느린 걸음만큼 더 천천히 내 곁을 떠날 것을 안다.
인하대병원 영안실에는 눈이 퀭한 광명원 선생님들이 지키고 계셨다.
아무도 없다. 아이를 지켜주는 가족이 아무도 없다.
애통터지는 일이다. 가슴이 아려 미칠 지경인 일이다.
아이 영정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놓고 내 무릎은 저절로 굽혀졌다.
“종경아…!”
나직이 불러보는데, 이름 뒤로 종경이의 웃음이 보인다.
“선생님, 저 편해요. 잘 지냈었어요, 세상 참 좋았어요. 고마웠어요. 저 갈게요….”
오히려 내 등을 어루만지며 위로하는 종경이의 모습을 보았다.
“미안하다. 종경아, 그냥 미안하다. 잘 가고, 지금까지 내게 보였던 웃음으로 천국에서도 잘 살렴.”
고 2. 10대. 그 들끓는 짧은 시간.
아무 것도 없이 와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는 종경이다.
하지만 아이의 웃음은 내 가슴에
오랫동안 멍울로 남을 것이다.
오열하는 그 시간, 아버지가 왔었노라고 했다.
그런데 차마 아들을 못 보겠노라고 장례식장 밖에 있다가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마지막 떠나는 아들조차 보지 못하는 어떤 기막힌 사연이 있기에
두꺼운 유리문을 열고 한 발만 들어서면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을 텐데
종경이도 종경이의 부모도 끝내 지상의 매듭을 풀지 못하고 떠났다.
뇌종양이었다.
수술할 수 없는 부위에 혹이 있어 결국 수술을 받지 못하고
어제 새벽 3시에 잘 걷지도 못하는 걸음걸이로 뒤뚱뒤뚱 떠나갔다.
기억하니, 종경아?
빨리 나아 퇴원하면 네가 병실에서 찍은 사진을 주마고 했는데
내 손 꼭 잡고 그러마고 했는데...
우리는 모두 꿈을 꾼다.
종경이에게 꿈은 날마다 밥처럼 포만감 가득한 일상이었다.
내 제자 종경이는 꿈을 꾸다 그 꿈속에서 모든 것을 접고, 멋모르고 세상을 등졌다.
널 다시 꿈속에서나마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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