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태주는 해서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한 손으로 능숙하게 운전하는 태주 옆에서 해서는 똑바로 앞만 내다보며 앉아 있었다. 집 앞에 도착을 하고 태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해서야.”
“네.”
어둠이 내려앉은 377번지 골목을 내려다보면서 두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나는 너한테 울타리가 되고 싶었어.”
실컷 뛰어놀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콧노래를 부르며 뛰어 들어올 수 있는 울타리이고 싶었다. 가슴 찢기게 아픈 일이 있어도, 눈이 짓무르게 펑펑 울다가도 때가 되면 들어오고, 또 들어오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울타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아니라 네가 나한테 울타리가 됐더라고.”
살붙이보다 가깝고, 늘 신고 다니는 운동화보다 편하고, 매일 먹는 밥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녀석이 돼 버렸다. 죽을 것처럼 피곤하다가도 집에 들어오면 날아갈 듯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깨질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아도 집에만 오면 노곤하게 풀어졌다. 이해서가 있어서, 이해서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어서 그랬다.
“나는 너 못 버려.”
이해서가 간다면, 이제 그만 다른 놈의 울타리가 돼야겠다고 한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지만 먼저 이해서를 버리는 짓은 할 수가 없다.
“아니, 안 버려.”
“아저씨.”
해서는 여전히 마른 눈으로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
“이렇게 손잡아 주고 안 버린다고 말하면, 그렇게 말하면 나는, 나는 아저씨를 떠날 수가 없어요.”
제 멋대로 생각하는 거라고 비난해도 할 수 없다. 이렇게 가슴 떨리게 하고 오해하게 만드는 건 문태주니까.
“어, 떠나지 마. 좋은 사람 만나서 떠날 때까지 절대로 떠나지 마.”
해서가 고개를 돌려 태주를 바라봤다.
“그렇게 말하면 좀 위로가 돼요? 그렇게 말하면 마음이 좀 편해져요? 숨이 쉬어져요? 다 아닌 게 돼 버려요?”
말간 얼굴로 해서가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태주는 하나도 답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번번이 들키면서, 자꾸 오해하게 만들면서 정작 아저씨는 왜 그래요?”
“나는 너랑 이렇게 손을 잡고 있어도 하나도 떨리지가 않아. 만약 떨렸다면 너랑 나, 지금까지 같이 못 살았어.”
태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잔인할 정도로 단호했다.
“약속 지킬 수 있게 해줘.”
“아빠랑 한 약속 충분히 지켰어요.”
“아니, 아직 아니야. 그러니까 그만 까불고 착한 이해서로 돌아와.”
10살이나 어린 녀석을 탐하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얼굴로 교복 입고 학교 다니는 걸 다 지켜본 녀석을 여자로 보는 그런 파렴치한 인간은 되고 싶지가 않다. 지켜 주겠다고 했으니 오빠처럼 아빠처럼 지켜 주기만 하면 되는 거다. 다른 마음은…… 미친 거다.
“선 봐요, 그럼.”
불쑥 투정처럼 말이 나와 버렸다. 화가 나서였다. 바닥까지 다 보여야만 움찔할 것 같은 바보 같은 문태주 때문에 잔뜩 심술이 나 버렸다.
“그건 내 문제야.”
“아니, 내 문제이기도 해요. 나 때문이라고 다들 오해하고 있으니까 선 봐요.”
“내려, 들어가자.”
태주가 잡고 있던 해서의 손을 놨다. 따뜻했던 손바닥으로 서늘한 바람이 내려앉았다. 차에서 내려 앞을 지나가는 태주를 해서는 눈을 깜박이며 쳐다봤다. 어둠 속에서도 태주는 또렷하게 보였다. 눈을 깜박이는 동안에도 그의 모습은 지워지지가 않았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