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7월의 어느 더운 날, 대구의 두류산 기슭에서 태어났다. 형제 많은 집안의 넷째 손가락 같은 존재로 자라서, 또한 넷째 손가락임에 틀림없는 이와 만나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 우리를 꼭 닮은 아이가 두 명 있다. ‘반월문학회’를 만나서 창작의 불을 지폈고, ‘창작소설비평회’에서 남의 작품을 읽으며 소설 쓰는 법을 익혔다. 지금은 집에 꼭 들어앉아서 혼자 작업을 한다. 1997년에 매일신문 신춘문예 공모에서 <해무>가 당선이 되어 ‘문학의 바다’에 첫 발을 담갔고, 2008년 제 40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이 되며 두 발을 적셨다. 집필한 작품으로는 <해무> <대설주의보> <달의 지평선> <와인과 탱고> <거대한 농담> 등이 있다. 바흐의 음악을 좋아하고, 심리학에 관심이 많으며, 읽었던 책을 반복해서 읽는 습관이 있다. 카뮈의 <이방인>과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특히 좋아한다.
엄마에게 부고를 띄우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는 비트 빠른 엄마의 삶 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나 또한. 역 구내의 컴퓨터에 다가앉았다. 동전 투입구에 오백 원짜리 동전을 밀어 넣었다. 톡!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했다. 검색 창에 ‘장례대행업소’라는 글귀를 두드려 넣었다. 수십 개의 장례업소가 줄을 이었다. 엄마가 전화를 받는 속도보다 백 배쯤 빠르다. 부르는 대로 반응하는 매개체를 두고 괜한 수고를 했다. 적당한 장례대행업체를 찾아냈다. ‘파트라슈 대행업체.’ 이름이 마음에 든다. 어릴 때 ‘플랜더스의 개’를 보며 참 많이 울었다. 순수하게 울 수 있었던 시절에는 눈물도 흔했다. 마지막을 예감한 할아버지가 마당에서 별을 보며 늙은 개 파트라슈에게 혼자 남게 될 어린 네로를 부탁하는 장면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만화영화를 보며 울 때보다 더 슬픈데 어째서 지금은 울지 못하는 것인지.
나는 아직 아버지를 위해 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파트라슈 장례대행업체’의 번호를 눌렀다. 광고에 사람은 물론이고 고양이와 개 장례식까지 몽땅 책임진다고 쓰여 있었다. --- p.57
천변을 가득 덮은 꽃물결이 멀미를 일으켰다. 꽃무리를 지켜보며 어질어질한 멀미를 느꼈다. 나비는 화려한 날개와 부드러운 춤사위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푸른 옷을 갈아입은 나무는 맑은 숨을 불어냈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맑고 투명했다. 아버지는 지금 어쩌고 있을까. 내가 와주길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축제다! 하아, 사흘 동안 나날이 축제라니! 가설무대에서는 리허설이 한창이고, 사람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거리로 쏟아지는가 하면 풍물패가 거리를 쾅쾅 울리고 다닌다. 곳곳마다 꽃물결이 넘치고 둔치에 서 있는 루미나리에는 밤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거리에 어둠이 스며들고 빛의 궁전이 찬란하게 날개를 펼치고 피어나면 인디 록 밴드의 야외공연이 시작될 것이다. 세상이 온통 환희와 열정과 젊음으로 ‘뷰티풀’을 외치며 깨어나는 그 속에 아버지가 죽어 있다.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축제를 맞이해야 할 때, 나더러 상복을 입고 슬픈 표정을 지으라고? --- p.81
“혹시 남아도는 시간 있어요?” “있으면?” “빌려줘요.” “어디 쓰려고요?” 남자가 정우의 꼬불꼬불한 털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물었다. 개의 눈빛이 나른하게 풀렸다. 목덜미를 긁어주는 것이 좋은지 목젖이 보이도록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RPG를 그려 보이며 말했다. “파트너가 필요해요.” “한 팀이 세 명 이상이라고 들었는데요.” “얘가 있잖아요.” 나는 정우를 가리켰다. “머릿수를 채우는 데는 도움이 될 거예요.” “개가 재미있어 할까요?” 개를 팀으로 삼겠다는 말에 남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모르긴 해도 RPG게임 사상 초유의 참석자로 기록이 되겠습니다.” “시간을 빌릴 수 있을까요?”
“<스무 살의 축제>는 안정된 필력과 구성력 갖춘 작품” - 송은일(작가) 장정옥의 <스무 살의 축제>는 잘 짜여진 한 편의 여성 입사(入社)소설이다. 작가는 아버지가 죽은 후 스무 살 여성의 홀로서기의 여정을 경쾌하고도 발랄한 문체로 뛰어나게 형상화하고 있다. 이 소설은 여성 입사 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연작, 은희경의 <새의 선물>, 이근미의 <17세>와 같은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그 선배 작가들의 소설보다 의식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자유롭다.
‘정우’라는 이름의 블랙러시안테리어와 우연히 만난 남자와 함께 한 축제가 끝나고 난 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또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그 세상은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따뜻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축제인 스무 살의 나이를 나비처럼 부드럽게 날아가는 주인공을 통해, 장정옥은 21세기 발랄 여성 성장사의 한 전형을 솜씨 좋게 형상화하고 있다. - 하응백(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