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대학 졸업 후 대전 소재의 신문사와 출판사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봄 허점투성이의 이십 대를 뒤로하고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아무런 기대없이 그저 향기로운 축제에 휩쓸려 투고한 단편소설 「은빛 지렁이」가 200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등단의 기쁨은 한순간이었다. 그 후 최소한의 경제활동에 만족하며 스스로 쌓아 놀린 동굴 안에서 습작에 매달렸다. 문학과 가까워지면서 귀감으로 삼은 작가는, 소설의 공장을 차리기보다 소설의 수도원을 세우려 했다던 귀스타브 플로베르다. 현재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의 속살을 다듬고 있다.
우아하고 세련된 프랑스 요리에나 어울릴 염소치즈에 나박김치를 곁들여 먹으면서 엄마는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자궁암 말기였다. 암세포가 방광, 직장, 복강 안까지 번져 수술은 하나마나였다. 콩팥에도 물이 찼다. 그 악성 종양은 건강하게 자라 척추까지 점령지를 넓혔다. 엄마는 병원 침대에서 앉은뱅이로 사 개월을 살다가 숨을 거뒀다. 아무도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아버지가 모처럼 사우나탕에 다녀온 사이 엄마는 저승으로 부리나케 달아났다. 나는 분당 율동공원에서 번지점프를 하려고 순서를 기다리다가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기압골의 영향을 받아 온종일 날씨가 흐렸던 날이었다. 그 무렵 나는 집에 중환자가 있는데도 직장생활과 연애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제 그만 엄마가 세상과 인연을 끊어줬으면 하는 몹쓸 소망, 한 생명에의 단념이 뜻밖에도 내 일상을 바로잡아줬다. 엄마가 정을 떼려고 그렇게나 추한 몰골로 내 곁에서 오래도록 버둥댄 거라면 당신의 목적은 이루어진 셈이다. 실제로 나는 엄마의 부음 소식을 접한 뒤 높이 사십오 미터의 번지점프대에서 몸을 날리며 목이 터져라 환성을 올렸으니까. 구름 사이로 날아가는 엄마의 영혼을 본 듯한 그날의 번지점프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 p.63
“할아버지는 이 마을에 오래 사셨어요?” “그럼, 여기서 반평생 넘게 눌러앉아 있었지. 얘랑 나는 죽마고우나 마찬가지야.” 눈썹마저 새하얀 노인이 지팡이로 정자나무를 가리켰다. 내 의심과 궁금증이 서서히 풀릴 기미가 비치기 시작한다. “제가 역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인데요, 우리나라 종갓집에 관심이 많아서 짬이 날 때마다 이렇게 찾아다니고 있어요. 이곳에도 그런 대갓집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내려왔는데 혹시 이 동네에 유진석 씨 본가가 있나요?” 나는 고삐를 확 잡아당기는 기분으로 순식간에 지어낸 말을 얼른 내뱉었다. “유진석이라……그 양반이 유상열 어른의 자제가 아닌가 싶은데, 가물가물하네. 그 집안의 소작농이었던 내 친구한테 물어보면 대번 알 수 있는데 작년에 저승으로 내빼버렸어. 아무튼 저 윗동네에 번드르르한 대갓집이 있기는 해. 거기가 유상열 댁이야.” 그가 뜸을 들이면서 슬슬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별안간 가슴에 뚫린 구멍을 메우려고 나는 생수를 들이켰다. 물이 부족하다. 나는 물 대신 깔깔한 공기를 듬뿍 들이마셨다. 오랫동안 땅속에 파묻혀 있던 누군가의 은밀한 유품이 조금씩 형체를 드러내는 것 같다. 유상열이라는 이름을 생전 처음 들어보는데도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다.
『이별, 다섯 번』은 이별이라는 쓰라린 상처를 통해 삶과 화해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이별은 갑자기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그 황망한 이별의 폐허에서 인간은 새로운 만남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이 소설은 낭만적이면서도 조금은 쓸쓸한, 그러면서도 잔잔한 여운이 남는 사랑와 화해 그리고 용서의 드라마다. 하응백(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