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내가 찾아가면 그때마다 어김없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준다. 특히 미국의 의회도서관만 가면 사서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세계가 갑자기 붕괴하더라도 의회도서관만 건재하다면 복구는 시간문제다.” 인류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다 가지고 있으니, 설사 세계가 멸망해도 이곳만 무사하다면 문명을 재생할 수 있다는 그들의 자부심이 결코 과장으로 들리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독일 국립도서관에서 판매하는 관광엽서에는 아름다운 도서관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사람들은 어디에서 최고의 지식을 얻는가?” 그 물음에 “바로 도서관이다.”라는 대답 한마디로 그들의 긍지를 읽을 수 있었다. _p.4
종이 위에 한자씩 땀으로 새긴 필사본들은 전쟁터의 횃불 또는 땔감으로, 때로는 병사들의 휴지로 사용되고 나아가 질 좋은 양피지 책은 그들의 군화를 수선하거나 군복을 깁는데 사용되었다. 무식한 독재자와 세상 물정 모르는 병사들만 탓할 일이 아니다. 16세기 영국의 헨리 8세는 로마가톨릭을 죽이고 수도원도서관을 없애 30만 권 이상이 지상에서 사라져 단지 2퍼센트 도서만이 살아남았을 뿐이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도 예외일 수 없었다. 거란의 침공으로 왕실문고가 파괴되고 몽고군의 침략으로 고려대장경이 모두 화마에 사라졌다. 부처님의 불력으로 외세의 침입을 막고자 다시 만든 것이 지금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경판이다. 임진왜란 때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고 많은 장서가 일본으로 넘어갔다. 최근 정부가 밝힌 자료를 보면 일제가 함부로 가져간 책들이 8만 점이나 된다고 한다. 8만 권이면 웬만한 도서관을 가득 채울 분량이다. 그것도 모두가 국보급 문화재라니! _p.23
인간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로병사’일 것이다. 태어나고 죽는 이 불변의 진리 앞에서는 존재의 형이상학이나 유전자의 영속성을 강변하는 생물학, 혹은 환생을 신봉하는 윤회설조차도 그저 변명이나 사변에 불과하다. 거스를 수 없는 이 생사의 법칙은 삶이란 드라마의 유일한 대본이며, 그 단역배우인 우리는 결코 이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한다. 구체적 대본 없이 오직 역할만 주어진 채 삶이라는 무대 위로 호출당한 등장인물 인간! 어찌 보면 허망하고 안쓰럽다. 시작과 끝이 명백한 이 삶의 드라마는 비극일까 희극일까. 행여 쓴웃음과 실소만이 상처처럼 남게 되는 어이없는 해프닝은 아닐까. 어느 날 갑자기 무대 위로 호출된 우리네 삶의 풍경을 엿보고 싶다면 즉시 피란델로를 펼쳐야 할 것이다. _p.63
1600년대에 재건된 성균관의 규모와 시설 인프라를 보면 강의실로 명륜당(明倫堂)이 있고 기숙사로 동제(東제)와 서제(西제)가 있으며 시험장으로 비천당(丕闡堂)이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양식을 대고 식당으로 쓴 양현고(養賢庫)와 함께 대학도서관으로서 존경각(尊經閣)이 있었다. 특히 성균관 안에 독립된 도서관 건물로서 1475년(조선 성종 6) 설치된 존경각도서관은 하이델베르크에 비하면 대단한 것이다. 이춘희 교수에 의하면 존경각에는 장서의 출납을 맡는 2명의 전임직원을 두었고 납본제도(納本制度)를 시행했으며 보유한 장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경사, 제자백가, 잡서 등, 수만 권을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그 당시에 대·소 건물 50여 채를 갖춘 조직적이고 완벽한 시설을 갖춘 존경각에 비하면 과거의 하이델베르크도서관은 도저히 비교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_p.63
이런 의미에서 박물관과 도서관은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수도원의 도서관이나 옛날 도서관을 돌아보면 과연 이곳이 도서관인지 박물관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곳 역시 도서관을 포함해서 박물관, 천체관측소, 연구 및 교육기관이 한곳에 모두 모여 있기 때문에 별도로 ‘국립도서관’ 간판 대신에 ‘클레멘티눔’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_p.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