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단천 출생. 1929년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공립농업학교에 입학후 퇴학. 1933년 연희전문학교 수학..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가 상업학교에 편입, 졸업했다. 1937년 미국으로 유학, 마운트유니언대학(영문학 전공)·컬럼비아대학 등을 다녔다. 1940년 귀국하여 광산·농장·과수원 등을 경영하였다. 1945년 8월 18일 결성된 조선문학건설본부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1945년 11월에는 『동아일보』 공보처 여론국장으로 재직하였다. 1946년 9월 임화(林和)·김남천(金南天) 등의 권유로 조선공산당에 입당. 1947년 8월 사직하고 문학가동맹 외국문학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11월 서울타임즈(The Seoul Times)』의 주필로 활동, 1949년 12월 보도연맹에 가입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인민군 전선사령부 문화훈련국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51년 정전회담의 통역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나, 1953년 박헌영(朴憲永)·이승엽(李承燁) 등을 숙청할 때 사형을 언도받았다. 저서로는 1949년 민교사에서 발행된 『청춘(靑春)』이 있다. 문학 활동으로 1932년『동광』에 「거리에서 들려주는 노래」를 발표하였으나, 본격적인 시작 활동은 광복 직후 발간된 시집 『종(鐘)』(1947)·『포도』(1948)·『제신의 분노』(1948)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장편소설 「청춘」(1946)을 쓰기도 하였다. 첫 시집 『종』 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편소설 「청춘」의 한 부분인 「빛을 잃고 그 드높은 언덕을」을 제외하면 모두 28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