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 (金東仁) 1900. 10. 2. ~ 1951. 1. 5. 호는 금동(琴童), 필명은 춘사(春士). 1900년 10월 2일 평남 평양 출생. 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와 가와바다미술학교에서 수학. 주요한(朱耀翰)?전영택(田榮澤)?최승만(崔承萬)?김환(金煥) 등과 함께 문학동인지인 『창조』를 발간. 1919년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면서 문단활동 시작. 「마음이 옅은 자여」(1919), 「배따라기」(1921), 「목숨」(1921) 등과 같은 작품에서 이광수의 계몽주의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적 경향을 표방하였다. 1923년에 첫 창작집인 『목숨』을 창조사에서 출간. 『영대』 동인으로는 『창조』 동인 외에도 김여제(金與濟)?김소월(金素月) 등이 참가하였다. 1925년에는 「명문」, 「감자」, 「시골 황서방」과 같이 자연주의적 작품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30년 부터「광염소나타」, 「광화사」, 「젊은 그들」(1930~1931), 「운현궁의 봄」(1933), 「왕부의 낙조」(1935), 「대수양」(1941) 등을 발표하였다. 1951년 1월 5일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