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사람들에게서 받았던 무시와 천대가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 분노나 슬픔, 수치심과 같은 정서적 고통 또한 여전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되어 반응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이렇게 고통스럽고 아프다는 것은 실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상실의 감정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버텨야 하기에, 견뎌야 하기에 괜찮은 것처럼 위장하느라 감정이 마비된 탓에 진짜 자신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관계의 불신 속에서 점차 타인이 건네는 위로와 지지도 일단 의심하고 보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것은 고통이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운 것이며, 사랑받고 보호받고 싶은 정서인 것이다. 우리 중 누구도 고통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 「'들키고 싶지 않은 고독과 소외감'」 중에서
의도치 않게 너무 넓은 영역에서의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혼자 사색의 시간을 갖기보다는 늘 누군가와 소통하고 공유하기를 강요당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미처 손에 닿지도 않을 먼 거리에 존재하는 사람들까지 신경 쓰고 배려하는 것에 지치고 힘들었던 적은 없는가?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관계 권태기에 빠진 사람들은 점점 더 말하는 것이 귀찮고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불필요하게 노출되는 개인의 사생활에 지쳐버린 탓에 내가 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의 저녁 식사 메뉴를 알아야 하고, 불면증을 위로하고, 주말 나들이를 부러워해야 하는가를 떠올리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에서 비춰보니 인간관계에 대한 J의 입장이 아주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 「'관계의 취향을 돌아보는 나와 너에게'」 중에서
‘이건 좋은 거고, 저건 나쁜 거야’라는 부모의 이분법적 사고는 자녀를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늘 신경 쓰는 사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눈치를 살피는 불안도가 높은 사람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사실 부모가 자녀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보상과 처벌 방식은 ‘얻을 가치가 있다’는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는 탓에 스스로를 정해진 틀에 규정짓고 단정하는, 유연하지 못한 대인사고를 갖게 한다. --- 「'더 멀어지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중에서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무작정 피하려 든다거나 갈등의 크고 작음을 따지기보다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 노력, 표현을 피력하는 것을 망설이는 이유는 잘 해결되지 않을까 봐, 현재보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관계를 망쳐버릴까 봐 두렵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 불안한 마음은 밸브가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물처럼 나와 상대를 불쾌하게 적시고 만다. 따라서 상대가 내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타인이라면 어느 시점에서는 그 사람의 방어기제를 견뎌줄 수 있는 연민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 「'방어기제를 무너뜨리는 연습’ 중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관계 안에서 상대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만큼 충족되지 않을 때 상대가 괘씸해지면서 화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 갈등의 매듭을 푸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느꼈는지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상대가 전하는 말을 왜곡하지 않고 솔직하게 들어주는 것이다. 알량한 자존심에 기대 마음을 숨기는 것은 갈등을 악화시킬 뿐이다. ‘말 안 해도 이 정도는 알겠지’가 사실 사람 잡는 것이다. 서로를 비난하고 경멸하는 대신 배려와 연민으로 감정을 탐색해서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면 관계는 회복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