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장기오는 KBS 대PD, 드라마 제작국장, TV문학관 〈금시조〉, 〈홍어〉를 비롯하여 대하드라마, 특집드라마 등 총 47편의 드라마를 직접 연출하였다. 제1회 프로듀서상, 제25회 백상예술대상, 1989년 독일 후트라상, 제10회 상하이 TV페스티발 백목련상 등을 수상. 그 외 다수가 있다. 『현대수필』로 등단하였으며 수필집 『나 또한 그대이고 싶다』, 그 외 저서로는 『TV드라마 바로보기, 바로쓰기』, 『TV드라마 연출론』, 『장기오의 TV드라마론』이 있으며, 문예교양지 『연인』 편집고문으로 있다.
아이들의 추억에는 아버지가 없다. 생애에 딱 2번, 바닷가를 찾았던 일이 유일하다. 대신 아이들은 깊은 밤, 책상 앞에서 무언가 열심히 일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되살리곤 한다. 집에 와서도 나는 콘티(연출 플랜) 짜는 일로 날밤을 새우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우리 아이들은 지금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30여 년을 보내고 나니 내 발바닥의 굳은살은 바위처럼 단단해졌다. 굳은살은 젊은 날, 땀의 상징이고 인생의 옹이다. 한 해의 마지막 볕 좋은 날, 마루에 나앉아 한가롭게 면도날로 굳은살을 베어 낸다. 살 한 점, 한 점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지난날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르고 사라진다. 삶이, 기억이 그렇듯 이 옹이도 언젠가는 엷어지고 사라질 것이다. 평생을 무엇을 그리 찾아 헤맸기에 이렇게 두텁게 옹이가 앉은 걸까. 지금은 바삐 돌아다닐 일도, 누가 숨 가쁘게 찾는 일도 없다. 굳은살이 점점 얇아지는 발을 어루만지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쨍하게 차갑고 높아 보였다. 사라지는 것은 시간이 아닐 것이다…… 우리들일 것이다.
그가 연출한 드라마에 빠져들 듯 모처럼 잘 읽히는 글을 만난 즐거움으로 『사라지는 것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다』를 단숨에 읽었다. 수식이 없는 간결 담박한 그의 문체는 그 어떤 엄살이나 능청이 없는 진솔함으로 빛이 난다. TV 드라마의 명장 장기오 대PD가 이제는 문필가의 저력으로 풀어놓은 ‘방송에서 못 다한 이야기’는 그 시대를 산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며 노년기의 원초적 외로움과 문청 시절의 그 시심이 아직도 건재함을 구김 없이 토로한 ‘쓸쓸함에 대하여’와 ‘그리움은 한이 되고 노래가 되고…’는 그가 무섭게 바뀐 세상 저 안쪽에 묻혀 사라지고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글을 통해 복원해 낼 큰 이야기꾼으로서의 변신, 차원 높은 연출가의 작심을 엿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내 고향 강원도 홍천 시골 마을에 황토집을 짓고 새로이 시작한 장기오 대PD의 글쓰기 즐거움, 그 멋진 드라마의 마지막 반전, 그 감동이 기다려진다. 전상국(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TV문학관〉이라는 프로가 한국문학을 국민들에게 알려 주는데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우리는 안다. 그 프로를 만들어 왔던 ‘대PD 장기오’ 감독의 털어놓지 못했던 깊은 속내…… 화려한 조명 뒤쪽, 고독한 한 사내의 얼굴을 보면서 이제 한 인간으로 그를 다시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유금호(소설가·목포대학교 명예교수)
한 편의 영상을 보듯이 하나의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감동을 문자 텍스트를 통해 전달받고 있다. 그것이 장기오 수필의 문채(文彩)의 힘이다. 이 수필집은 대PD였던 장기오 교수의 드라마에서 못한 비화들, 그리고 영상으로 보여 줄 수 없는 언어 텍스트를 통해 자신의 서정적 자아와 삶에 대한 혹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보여 주고 있다. 유한근(문학평론가·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