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뮤직 가이드(All Music Guide)를 펼쳐서, TLC를 찾아보면 첫 줄에 이러한 소개가 나와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높은 앨범 판매량을 갖고 있는 여성 R&B 그룹 중 하나'.
티-보즈(T-Boz), 레프트 아이(Left Eye), 칠리(Chilli)로 구성된 3인조 R&B/ 힙합 트리오 TLC(세명의 이니셜을 딴)는 높은 판매고만큼이나 90년대 팝 흐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그룹으로 꼽힌다. 국내 가요계는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일반화 되어 있는 R&B와 힙합의 크로스오버가 본격화 되고,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는데 있어 결정적인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내에서만 천만장이 넘게 판매된 그들의 두번째 앨범 'Crazysexycool'은 대부분의 음악지-까다로운 음악지 SPIN을 포함한-가 선정한 '90년대의 앨범'이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TLC는 음악적인 편곡이나 사운드 면에서도 늘 첨단을 달려왔던 밴드이기도 하다. TLC의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국내 엔지니어들이 앨범을 사서 사운드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것은 이를 증명하는 사례.
이들은 힙합과 R&B 팬들은 물론, 팝음악 팬들에게 크게 어필하여 폭넓은 대중적인 인기와 영향력-음악 뿐 아니라 패션이나 문화 전반에 걸친-을 발휘해 왔다. 일례를 들어 바지를 내려 속옷 밴드 부분이 보이게 하는 패션은 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단지 세 장의 스튜디오 앨범만을 발표했지만 두번째 앨범 'Crazysexycool'이 다이아몬드 앨범(천만장 이상 판매된 앨범에 붙이는 명칭)을 기록한 것을 포함해 'Oooooooooohhh…On The TLC Tip', 'Crazysexycool', 'Fanmail' 세 장의 앨범이 미국 내에서만 총 2,200여만장이 판매되었고, 전세계 판매량은 2,700만장에 이른다. 앨범별로 무려 900만장씩을 판매한 셈이다. 다섯 개의 그래미 트로피는 그들에 대한 음악계의 평가를 그대로 말해준다. 하지만 최고의 여성 그룹이라 말해도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을 이 삼인조 TLC가 순탄한 길을 달려온 것만은 아니다. 데뷔 당시의 잘못된 계약으로 파산 신고를 맞는가 하면, 지난 4월 25일에는 유능한 멤버 레프트 아이(Left Eye)를 교통사고로 잃는 등 호사다마의 과정을 거쳐 왔다. 능수능란한 래퍼이자 앨범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며 그룹의 브레인으로 자리매김해 왔던 레프트 아이(Lisa "Left Eye" Lopes)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더 이상 3인조 TLC의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다. 3년만에 돌아온 TLC의 새앨범은 그래서, 레프트 아이의 유작이자 TLC의 마지막 앨범이 될 지도 모른다. 이 앨범은 레프트 아이의 영전에 바치는 추모 앨범이면서 TLC 팬들과 전세계 음악 팬들에게 보내는 최상의 팝 앨범이다. 물론 이 앨범에서 생전의 레프트 아이의 래핑을 들을 수 있다.
"가장 높은 앨범 판매량을 갖고 있는 여성 R&B 그룹 중 하나"
TLC는 1991년에 LA에서 결성되었다. 여성 그룹 활동을 하면서 만나게 된 티-보즈와 레프트 아이는 자신들만의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는데, 때마침 80년대 R&B 싱어였던 페블스나 서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프로듀서 댈라스 오스틴(Dallas Austin)과 만남을 갖게 되면서 이들은 자연스레 페블스의 남편이자 거물 프로듀서/ 경영인 엘에이 리드(LA Reid), 베이비페이스(Babyface) 등의 회사 RCA 레코딩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칠리는 댈라스 오스틴이 소개시켜 준 멤버. 이들의 첫싱글 'Ain't 2 Proud 2 Beg'로 단번에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첫번째 앨범 'Ooooooohhh…On the TLC Tip'은 4백만장이 넘게 팔렸다. 옷에 콘돔을 달고 나오는 등 기이한 첨단 패션은 사람들을 실색케 했지만, 이들의 음악적 역량과 가능성은 이들을 단지 화제를 몰고 다니는 그룹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94년에 발표된 두번째 앨범 'CrazySexyCool'은 90년대 음악계에 있어서 앨범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큼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던 작품이다. 'Creep'과 'Waterfall' 등이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는 가 하면, 그래미 시상식, 빌보드 뮤직 어워드(Billboard Music Awards), 엠티비 뮤직비디오 시상식(MTV Video Music Awards), 소울 트레인 시상식(Soul Train Music Awards) 등 주요 시상식의 R&B 글자가 새겨져 있는 트로피를 독식하는 등 TLC는 일약 최고의 수퍼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모든 일이 잘 풀리는 와중에는 항상 마가 끼는 법. 레코드사와의 잘못된 계약에 의한 파산은 이들을 개점휴업 상태로 몰고 갔으며 98년 'Fanmail'이 발표되기까지 오랜 기간의 공백기를 갖게 만들었다. 6백만장의 판매량과 앨범 차트 1위 데뷔가 말해주듯 팬들은 4년만에 돌아온 이들은 진심으로 환영했으며, 그래미의 심사위원들은 '최고의 R&B 앨범상'을 이들에게 안겨주며 이들의 복귀를 축하해 주었다. 국내에서도 이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들의 패션과 음악이 국내 가요계에 미친 영향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국내에선 다소 생소했던 R&B/ 힙합 음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Crazysexycool'은 15만장, 그리고 유례 없는 불황에 빠졌던 99년에 발매되었던 'Fanmail' 또한 1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TLC의 두번째 앨범 'CrazySexyCool'은 올뮤직 가이드에서 별 다섯개 만점에 별 네개 반을 얻었다. 평단의 의견도 그러하지만, 대부분의 TLC의 팬들 역시 두 번째 앨범을 TLC 최고의 앨범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레프트 아이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어쩌면 TLC의 마지막 앨범이 될 지도 모르는 이번 앨범으로 인해 그러한 평가에 다소간의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미 롤링스톤즈를 포함한 음악지들은 이 앨범에 대해 '또 하나의 걸작'이라며 일제히 앨범을 칭찬하고 있으며, 팬사이트에서도 'TLC 최고의 앨범' 이라는 확연한 문구를 종종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