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어느 날 식을 치른 그 순간부터 가족이라는 단어로 묶이고 한 울타리 안에 들어간다. 이제 이들의 삶에 나도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어 함께 날을 물고 돌아가게 되겠지.
정신없이 술을 받아 마셨다. 결혼은 나와 소영, 둘만의 결합이라는 강했던 생각을 고쳐야 하겠지. 즐거우면서도 행복하면서도 자꾸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017년 5월 12일 : 가족이라는 이름의 톱니바퀴」중에서
소영이와 나는 조금은 다른 시차에 산다.
나는 닭, 소영이는 부엉이.
아침 여섯시, 두 시간 정도 먼저 일어나는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를 빠져나와 거실에 앉아 눈을 비비며 나올 그녀를 기다린다.
아마도 이 시간이 우리 사이를 영속하게 만드는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2017년 5월 20일 : 각자의 시간」중에서
청소를 하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아내가 살짝 토라진다.
“왜 자꾸 버리니? 넌.”
매번 어떤 물건이든 쌓아놓는 아버지의 성격을 싫어하면서도 그대로 닮아가는 나를 보며 참 놀란다. 나에게도 물건을 버리기 싫어하는 기질이 있었던 것이다. 집 안에 ‘정신과 시간의 방’이 있었던 듯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이 여기저기서 엄청나게 튀어나왔다. 발견된 모습을 보니 몇몇 물건들은, 아니 물질들은 이미 화학적 물리적 그리고 생물학
적 변형이 일어나 있었다. 도대체 이전에 어떤 물건이었는지 알 수 없는 모습들.
---「2017년 6월 4일 : 우리 집 적폐 청산」중에서
새 드라마를 앞두고 오래간만에 받는 연기 수업이다. 연기라는 것에 인생을 바치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고 싶다. 내가 하지 않았다면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였을 나의 배역.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엄청난 부담을 준다. 하지만 언제나 도전의 의지는 불타오른다.
---「2017년 7월 5일 : 분출의 카타르시스」중에서
드디어, 아내가 사표를 냈다. 걱정되고 초조하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궁금해 물으니, 아내의 퇴사 통보를 접한 보직 부장들은 아내에게 ‘그동안 미안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회사를 떠날 때와 똑같다. 결국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이해하고 인정한다.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다치고 싶진 않았을 테니. 남보단 내가 중요하니까.
---「2017년 8월 1일 : 아내가 사표를 냈다」중에서
어차피 가지고 있는 시간과 예산의 제약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장소란 없다.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유동인구와 시장성, 거기에 임대료와 권리금 그리고 내부 수리에 필요한 견적까지. 일단 장소를 잡는 것만 해도 결정할 요소들이 너무 많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부동산을 돌며, 서울에 있는 집이 이렇게 많았나 놀랐었는데 ‘상가’의 세계 또한 그만큼 깊고 넓은 것임을 깨달았다. 단 하나의 진리는, 어디
든 내 건 없고 적당한 곳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는 정도. 우리 둘의 서점은 어디에 깃들게 될까?
---「2017년 8월 18일 : 부동산 탐방」중에서
MBC 아나운서들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간 참고 삭여만 왔던 많은 일들을 고백하고 폭로하는 그 시간, 나도 미팅을 위해 상암에 있었다. 사무실 창밖으로 그들의 모습이 창밖으로 보이는데, 괜스레 눈물이 났다.
얼마나 힘든 시절을 겪었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나와 내 아내도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아무 해명도 듣지 못한 채 방송에서 제외되어 [우리말 나들이]를 연출해야 했고, 아내 또한 인터넷에 올렸던 서평과 글을 문제삼아 앵커 자리에서 내몰린 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무실 벽만 쳐다보아야 했다.
---「2017년 8월 24일 : MBC 아나운서들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며」중에서
작은 일로 크게 다퉜다. 서로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 화근이었다. 앞으로의 돈 관리 계획에 대한 대화 도중 의견 차이가 생긴 것. 아내는 내가 한 말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했고, 나는 내 말에 질색하며 고개를 젓는 아내의 행동에 화가 났다. 작은 갈등의 싹이라도 생길라치면 미리미리 풀어왔던 다른 때와는 달리, 오늘은 내가 속 좁게 행동하고 말았다.
---「2017년 9월 6일 : 각방 쓸 위기」중에서
법적으로 부부가 되어 처음으로 하는 일이 좀 의미가 있어야겠다 싶어 바로 서점으로 향했다. 한 대형서점의 합정점. 소영은 책 몇 권, 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샀다. 둘러보니 도쿄 후타고타마가와에 있는 츠타야 가전 같은 분위기가 많이 났다. 이들이 이뤄놓은 규모의 경제와 브랜드 가치가 부럽다. 거의 모든 책이 있고, 부담없이 들러 차를 마시고 다양한 굿즈를 구매하며 독서할 수 있는 이곳. 우리 서점도 그런 곳으로 만
들 수 있을까.
---「2017년 9월 12일 : 혼인신고」중에서
어릴 적 나는 아빠의 답답하리만큼 신중한 태도에 갑갑한 적이 많았더랬다. 매사 신속하고 기민하게 (좋게 말하면) 빠릿빠릿한 나와는 반대로 항상 말도 행동도 신중하게 하는 아버지는 비교적 모든 일들에 신속성을 강조하는 내가 언제나 불만이셨다. 당연히 나 또한 언제나 내 행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아버지에게 솔직히 말하면 반감이 컸다. 나 정도 되면 그래도 칭찬받을 만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학창 시절 그는 단 한 번도 내게 따뜻한 칭찬을 해준 적이 없었다. 내게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다.
---「2017년 10월 22일 : 아내의 생일」중에서
사실 어머니와 오래 살았던 아내가 처음부터 살림을 잘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장보기는 요령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먼저, 일종의 보급병으로서의 재능이 필요한데, 창고에 있는 재고들을 대략적으로는 알아야 물건을 살 수 있다. 나로서는 그래도 10여 년이 넘는 장보기 스킬로 익숙한 일인 반면, 아내는 그렇지 못하다.
---「2017년 11월 27일 : 함께 장보기 스킬」중에서
스튜디오에 들어가니 멋진 두 앵커의 건너편에 내 자리가 있다. 리포트가 나가는 동안 반갑게 맞이해주는 선배들. 화려한 조명이 비춰진 메인 앵커석이 고급 레스토랑 같다면 내 자리는 무허가 포장마차 같았다. 조그만 책상에 덩그러니 놓인 마이크. 떨리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서 소리나지 않게 예독을 해봤다.
---「2018년 4월 9일 : 잊지 못할 첫방송」중에서
우리는 서로의 모습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저 맛을 즐기는 데서 끝나지 못하는 우리의 지금. 장사를 하는 다른 분들도 모두 이럴까? 업장의 크기를 보며 객단가와 회전율을 생각하고, 테이블과 의자를 보며 인테리어 비용을 산정해보며, 음식을 먹으며 제조과정을 추리해보는 우리. 모르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니, 밥 먹는 것 하나도 이렇게 바뀌었다.
---「2018년 4월 22일 : 새로 생긴 직업병」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