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자.’ 이름이 선명하게 적힌 다이빙 수료증을 한참 들여다보던 엄마가 말했다. “엄마 인생에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고마워 딸.” 그 한마디가 찡했다. 자식 키우는 일이 엄마 행복의 전부는 아니었겠지. 엄마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해하는 평범한 사람인 걸 새삼 느꼈다. 엄마로 사느라 외면했던 꿈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쁘렌띠안 섬에서 생긴 일」중에서
‘엄마랑 또 여행을?’
“누가 엄마랑 또 온대? 난 한 달도 충분했네요.”
“엄마도 너처럼 구박하고 성질 더러운 사람이랑 안 가.”
그렇게 시작된 ‘나도 너랑 여행 안 가’ 배틀은 인천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여행이 시작된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티격태격. 우리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여전히 화를 낸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엄마의 툴툴거리는 모습이 전처럼 싫지가 않다. 여행의 여운이 남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엄마와 내가 진짜로 달라진 걸까.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여행의 끝」중에서
엄마는 숙소에서 잡일을 도맡던 어린 청소부를 불러 파파야와 리치를 나눠 먹고 있었다. 그때, 한 외국인 게스트가 거실로 나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에게 성큼 다가가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헤이, 내 방에 수건 좀 갖다 줄래?” 1초의 정적. 이후 우리는 빵 터졌다. 아, 물론 엄마는 빼고. 우리도 게스트라고, 엄마와 여행 중이라고 말해주니 외국인 게스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사과를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엄마는 ‘내가 현지인처럼 생겼나….’ 하면서 방에 들어가더니 머리를 빗고 립스틱을 바르고 나왔다고 한다.
---「저도 게스트입니다」중에서
“엄마 어때?” 엄마의 수영복 패션에 온 가족이 웃음을 터트렸다. 여행 배낭을 꾸리다 챙겨 갈 수영복이 마땅치 않다는 걸 깨닫고 부랴부랴 언니의 수영복을 입어본 것이다. 그런데. 언니의 수영복은 엄마에겐 작아도 너무 작았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탈락이었다.) 아빠는 고개를 돌렸고, 언니와 나는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무룩해진 엄마는 여행을 안 다녀봐서 수영복 하나 없다며 서글픈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수영복을 사달라는 이야기다. (엄마는 효심 찌르기 작전이 먹힌 후로 종종 같은 작전을 썼다. 딱 이번만 마지막으로 넘어가준다.)
---「비키니와 효녀」중에서
엄마, 여행 오니깐 좋지?”
“우리 엄마 보고 싶다.”
엄마의 엉뚱한 대답은 내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중략) 외할머니 이야기를 마친 엄마가 울었다. 덩달아 나도 울었다. 처음부터 나의 엄마였던 엄마도 딸이었다는 것을, 잊고 살았나 보다. 처음으로 내 곁의 엄마가 나의 엄마가 아니라 엄마를 그리워하는 여린 딸이구나, 싶었다.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중에서
여행에도 일요일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여행 자체가 일요일인데 무슨 일요일을 챙겨. 말도 안 돼. 1분 1초가 아까운데 일요일 챙길 시간이 어딨어.’ 하지만 여행자에게도 일요일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행에도 일요일이 필요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