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 유제프 보이티와, 그러니까 요한 바오로 2세는 영웅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신의 종교적 믿음에 따라 평생을 살다 간 인물이다. 사람이 살면서 신념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요한 바오로 2세는 매번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오히려 신념을 공고히 하며 한길을 걸어갔다. (…) 요한 바오로 2세가 이루고자 했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그것은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었다. 차별도 없고, 억압도 없으며, 모든 사람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런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그 세상을 위해 자신을 바쳤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며 내 안에 깃든 삿된 욕심이 새삼 부끄럽게 느껴진다. ---작가의 말 중에서
형 에드문트는 카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어머니가 떠난 지 3년 만에 에드문트는 성홍열로 그만 세상을 떠나 버린 것이다. 에드문트의 나이 스물여섯 되던 해였고, 카롤은 열두 살이 되던 해였다. 형의 죽음은 카롤에게 큰 충격이었다. 에드문트는 형이었지만 그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아버지 카롤 보이티와 역시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이제 남은 가족은 아버지와 카롤밖에 없었다. 단둘뿐. 세상에서 의지할 사람은 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잇단 가족의 죽음은 카롤을 더욱 성숙하고 강인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깊이 명상하게 했고,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약한지 알게 되었다. 사람들끼리 서로 네 편 내 편으로 나뉘어 미워하며 반목하는 것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하찮은 일인지도 깨달았다. 카롤은 혼자 있을 때면 깊은 묵상에 잠겼다. 하나님은 왜 이런 시련을 자신에게 주었을까? 다른 아이들처럼 그렇게 평범하게 지내게 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명씩 자신에게서 떼어놓으실까?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시련을 주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무엇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계획 중에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이라 언젠가는 그 뜻을 알게 될 거라고 믿었다. ---pp.49~50
삶에 대한 용기는 그런 데서 얻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보살핌과 이웃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에서 말이다. “오, 카롤. 장하구나. 훌륭해.” 성적표를 받아든 아버지는 감격한 나머지 음성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카롤이 졸업을 앞두고 치른 시험에서 전 과목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것이다. 어느새 아버지의 눈가에는 그렁그렁 눈물까지 고였다. “고맙구나. 고마워. 이럴 때 어머니가 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겠느냐?” “아마 어머니도 보고 계실 거예요.” 카롤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럴 거다. 틀림없이 보고 계실 거다. 암, 보고 있고말고.”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성적표를 액자 속의 어머니를 향해 흔들어 보이며 아들을 따라 웃었다.---p.66
카롤의 품속에는 얼마 전에 지은 「금 세상사의 작업장」이라는 새로운 작품이 들어 있었다. 카롤은 마침내 어느 이층 건물의 지하 계단을 밟았다. 밖에서 볼 때는 그저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그 집 창문으로는 불빛 한 점 새어나오지 않았다. 카롤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지하로 들어오기 전, 행여 누군가에게 뒤를 밟히지나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행히 뒤따라오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한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었다. 금속 손잡이가 달린 어느 현관문 앞에서 가볍게 노크를 했다. 약속된 암호에 따라 문을 두드렸다. 똑똑. 똑똑똑.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똑똑. 똑똑똑.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리고 나자 그제야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어서 와요.” 문을 열어 준 이는 밖을 한번 살피고는 서둘러 문을 닫아걸었다. “다들 왔어요?” 카롤은 자신을 맞아 준 단원의 어깨 너머를 살피며 물었다. “아니, 우리가 전부예요.” 카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약속 시간은 이십여 분이나 지나 있었다. 그 역시 빨리 온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뒤가 미심쩍어 돌아오느라 그만큼 시간이 지체된 터였다.---pp.106~107
공산당국은 그런 보이티와 신부가 눈엣가시였다.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높아 가면 높아 갈수록 그들의 감시는 더욱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보이티와 신부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들도 하나님의 사람들이므로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아끼지 않았다. “주님, 저들이 아직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저들에게 은총을 내리사, 저들이 하느님을 알게 하시고, 저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젊은 주교 보이티와는 옆에서 걱정을 할 만큼 열정적으로 일을 처리해 나갔다. 그는 피정과 명상을 했고, 기도의 날에는 당국의 감시에도 굴하지 않고 젊은이들을 만났다.---p.171
교황의 다음 목적지는 아우슈비츠였다. 미사를 봉헌할 제단은 아우슈비츠 근처의 브르제진카 수용소에 마련되?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강론할 연단 옆에는 유럽에서 유대인들을 수송해 오던 열차가 멈춰 서던 플랫폼이 있었다. “난 교황으로서 이곳에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 시대의 골고다에 왔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그간 유대인들의 학살에 침묵했던 교회의 잘못에 대해 사죄를 했다. 교황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