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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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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 프랑스 태평양 스탈린그라드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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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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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년 0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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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4.99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9만자, 약 5.4만 단어, A4 약 119쪽?
ISBN13 9788992326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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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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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정치적 수단과는 다른 수단으로 계속되는 정치에 불과하다.”
- 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제2차 세계대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
2차대전에 주도적으로 참전한 국가는 불과 10여 개국 남짓으로 소련·미국·영국·중국·독일·일본이 사실상 전쟁의 모든 것을 이끌었다. 2차대전이 세계대전이라 불리는 것은 단지 서류상의 참가국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피해와 잔혹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당시 직접 피해로 사망한 사람들만 무려 5,000만 명으로 추산하며, 전쟁터가 입체적으로 커져 후방 깊숙이까지 확대되다 보니 군인보다 민간인들의 희생이 더 컸었다. 그것은 앞으로 발생할 전쟁이 그런 방향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불길한 징조이기도 했다. 게다가 단지 인종ㆍ민족ㆍ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생명들이 학살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희생과 피해가 극심하다 보니 2차대전은 역설적으로 또 다른 큰 전쟁을 막기도 했다. 아니 사람들이 새로운 전쟁을 두려워하도록 학습시켰다. 2차대전 이후 극심한 이념 대립 가운데서도 냉전이 열전으로 비화하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냉전이 2차대전의 악몽을 잊기에는 너무 빠른 시간 내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 1945년 8월 15일을 2차대전이 끝난 시점으로 보는데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쟁의 시작은 보는 관점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 그 이유는 2차대전이 ‘각각 성격과 지역이 달랐던 여러 전쟁들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우선 2차대전의 전장은 유럽-아프리카 전구戰區, Theater와 아시아-태평양 전구로 크게 구분할 수 있는데, 두 전구에서 동시에 전쟁에 임한 미국 같은 경우도 있었지만 도발의 주역인 독일과 일본은 군사전략상 함께 공조를 취한 적도 없었다. 그러니 두 전구는 확연히 성격이 다른 별개의 전쟁이라 정의할 수 있고, 2차대전 발발일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1차대전과는 달리 교전국이 불명확하거나 그때그때 달랐던 점도 2차대전의 특이점이다. 결국 2차대전은 비슷한 시기에 세계의 이곳저곳에서 따로 벌어진 여러 개의 전쟁들이 결국 하나로 합쳐져 끝을 맺는 과정이다. 그리고 수많은 여러 전쟁의 총합이라 할 수 있는 2차대전 중에서도 주인공이 되는 전장과 그렇지 못한 전장은 분명히 구분된다.

1940년 프랑스

1차대전 종전 후 독일인들이 승전국들에 대해 느끼는 반감은 컸고, 그중 앞장서서 독일을 압박하던 프랑스에 대한 감정의 골은 상당히 깊었다. 보불전쟁普佛戰爭, Franco-Prussian War과 1차대전에 걸쳐 엄청난 피해를 입은 프랑스 또한 독일이 싫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보니 프랑스는 다른 승전국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몽니를 부려가면서 독일을 최대한 옥죄는 전후체제 성립을 주도했다. 베르사유 조약의 일환으로 독일 영토인 라인란트에 프랑스군를 주둔시켜 독일을 군사적으로 감시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1923년 전쟁배상금 지불 지연을 이유로 루르Ruhr 지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여 독일 경제를 파탄시켜 버리는 초강수를 두었다. 독일 국민들은 프랑스를 반드시 굴복시키고 싶은 미움의 대상으로 여겼고, 따라서 히틀러는 군부와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먼저 철천지원수 프랑스를 손봐야 했다.
하지만 프랑스와 동맹국인 영국은 나치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 파기를 선언하고 주데텐란트Sudetenland와 오스트리아Austria 등을 합병할 때도, 독일의 야욕을 제지하려는 어떤 적극적인 시도도 하지 않았다. 1차대전 당시 프랑스는 무려 140만이 전사하고 420만이 부상을 당했는데 이것은 당시 20~30대 프랑스 남성의 80퍼센트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이런 끔찍한 경험 때문에 프랑스에는 어떻게든 전쟁을 회피하려는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소극적인 태도가 결국 전쟁을 불렀다.
당시 프랑스는 세계 최강의 육군을, 영국은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독일이 속도와 집중을 앞세워 구사한 독창적인 전략 때문에 유럽의 육군 최강국 프랑스는 불과 7주 만에 독일의 자비를 바라는 입장이 되었다. 독일은 집단화된 기계화부대와 공군의 입체적인 지원을 통한 현대적 개념의 전격전을 최초로 구사했다. 자신 있게 프랑스 침공 명령을 내린 히틀러는 후일 “점령 후 이틀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피 말랐던 시간이었다”고 술회했을 만큼, 사실은 프랑스의 저력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단지 국토의 5퍼센트만 점령되고 200만 군이 아직 남아있었는데도, 저항을 포기하고 수도를 적의 손에 넘겨주었다.
프랑스 전역 전후로 나치 독일의 모습은 엄청나게 달라진다. 만일 프랑스가 그렇게 쉽게 몰락하지 않았다면 이후 벌어진 일련의 비극도 ?었을 가능성이 컸다. 한마디로 1940년 프랑스 전역은 2차대전 전체의 전환점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1942년 태평양

대외 침략을 가속화한 일본은 타이완臺灣, Taiwan, 사할린Sakhalin, 한반도, 만주滿洲, Manchuria 같은 지역을 차지했지만 필요로 하는 자원을 이곳에서 모두 구할 수는 없었고, 급기야는 중국 본토 침공을 감행한다. 이러한 일본의 도발은 필리핀Philippines을 기반으로 태평양에서 세력을 유지하려던 미국과 동남아시아를 식민지로 삼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를 자극했고, 더불어 만주와 국경을 접한 소련도 위협을 느끼게 만들었다. 미국은 일본에 석유를 비롯한 필수물자의 수출을 금지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고, 이러한 외교적ㆍ경제적 압박을 받은 일본의 강경 군국주의자들은 전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결국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2차대전의 불길은 태평양으로까지 확대되었다.

태평양전쟁은 상당히 이례적인 전쟁이었다. 전쟁을 시작한 일본은 처음부터 미국을 철저하게 패배시켜 승리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미국의 태평양 해군전력이 일거에 소멸된다면 이를 복구하거나 보충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 뻔했다. 이 시간 동안 일본이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미국 본토에 대한 안전을 약속하고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대한 지배권만 요구하는 형식으로 강화를 주장하면, 미국이 순순히 여기에 응할 것이며 외교적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도발을 받은 미국은 결코 일본의 의도대로 따르려 하지 않았다.

1942년 산호해Coral Sea, 미드웨이Midway, 솔로몬Solomon, 산타크루즈Santa Cruz 일대에서 벌어진 격전은, 항공모함 함대를 주축으로 하는 사상 최대의 해전들이었다. 태평양 전역은 그야말로 용호상박龍虎相搏의 형국이었고 결국 그러한 소모전에서 일본이 백기를 들게 되면서 지난 1931년 만주 침공 이후 욱일승천旭日昇天하던 일본의 기세가 꺾였다. 또한 이때는 새롭게 바다의 제왕으로 떠오른 항공모함이 전쟁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해전의 패러다임이 바뀌기도 했다. 어느 쪽 공격력이 더 뛰어나 상대 항공모함을 제압할 수 있는가의 여부로 전체 승부가 귀결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1942년의 해전들은 커다란 의의를 지닌 태평양전쟁의 전환점이었다 할 수 있다.

1942년 스탈린그라드
역사에 남을 만한 쾌속 진군을 선보이며 소련을 궁지로 몰아넣다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장군을 만난 독일군은, 광대한 유전과 곡창지대가 있는 캅카스Kavkaz 지역으로 눈을 돌린다. 캅카스는 소련에게도 생명선과 다름없이 중요한 곳으로, 이 지역을 빼앗긴다면 우랄Ural 산맥 동쪽의 시베리아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양군은 결국 남부 러시아의 최대 요충지 스탈린그라드Stalingrad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스탈린은 자기 이름을 따서 ‘스탈린그라드’로 이름 붙인 이 도시를 반드시 사수하고자 했다. 남부 러시아 한가운데서 벌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좁은 공간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끝장을 보려 했던 미친 인간들의 경쟁심이 만들어낸 지옥이었다. 1940년 프랑스 전역이 독일의 승천을 의미하는 변곡점이었다면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2차대전을 개시한 독일의 몰락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독일군의 스탈린그라드 공격은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시작했다. 스탈린그라드의 모든 것을 불태워 적의 전투 수행의지를 꺾고, 지상군이 쉽게 입성하여 도시를 장악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때까지 독소전쟁의 경과를 보면 이 정도의 타격을 입은 소련군은 급속히 전의를 상실했기 때문에, 공격에 나선 독일 제6군은 스탈린그라드를 손쉽게 점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방어에 나선 소련군의 저항은 완강했다. 도시의 폐허는 거대한 요새로 바뀌었고, 독일군은 시가전의 늪으로 끌려들어갔다. 양군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이곳에 집중 투입했다. 다른 전선으로 투입해야 할 병력, 전차, 대포, 전투기가 총동원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스탈린그라드는 명분이 아닌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자존심 대결장이 되었다. 몇 달간의 지루한 공방전 끝에 소련군이 천왕성 작전Operation Uranus을 성공시키며 스탈린그라드의 독일군을 포위하는데 성공한다. 이때까지는 독일이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하여 도심으로 압박하여 들어가고 있는 모양새였지만, 엄청난 규모의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에 투입된 모든 독일군을 순식간에 가두어 버린 것이다. 모두 25개 사단 총 33만에 달하는 집단군 규모의 대병력과 장비들이었다. 스탈린그라드를 완벽하게 포위하여 순식간에 위치가 바뀐 소련은 독일군을 천천히 고사시키기로 했다. 현지 지휘관 파울루스Paulus는 후퇴를 원했으나 히틀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현지사수를 명령했다. 결국 모든 희망을 잃고 고립된 독일 제6군은 소련군에 항복하고 만다. 그것은 스탈린그라드를 반드시 접수하겠다고 발악하던 히틀러의 광기로 인하여 엄청난 대군이 그 좁은 폐허의 도시로 집중되어 벌어졌던 최악의 참사였다.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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