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국기는 꽤 많다. 예컨대 우리 이웃인 일본의 국기는 해를, 중국의 국기는 5개의 별을 이용하고 있다. 반면 태극기는 세계의 수많은 국기 중 유일하게 ‘우주의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것만으로도 지구상에서 우리 민족만큼 하늘, 즉 우주를 사랑하고 숭상해 온 민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 즉 ‘하늘님’ 또한 우주를 숭상하는 우리 전통을 말해 주고 있다. 오죽하면 ‘개천절’, 즉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공휴일까지 가지고 있을까. 외국인들은 초현대식 빌딩을 짓고 나서도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는 한국인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행위 자체가 바람직하다 아니다 논하기에 앞서, 그것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지내온 ‘제천행사’에서 시작된 풍습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늘에 빌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남들이 ‘하늘의 자손’, 심지어 ‘우주 민족’이라 일컬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우리다.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다. 하늘의 자손은 하늘을 잊은 것이다. 심지어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축복받지 못한 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도 많다니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우리나라가 다민족국가로 변해가는 과정에 있어 우리 조상이나 민족을 거론하기가 점점 더 어색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합중국은 아니지 않은가. 세계화 시대에 개방과 포용은 수용하더라도 ‘줏대’를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일부가 외국에 나가 사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민족정신’을 잃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엄연히 한국어가 있고 한국인이 있는 이상 민족에 대하여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민족정신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미국 유학 시절 한국인의 민족정신이 무엇이냐고 물어 온 한 외국인의 질문에 무척 당황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3?1 정신, 새마을정신, 홍익인간 정신, 충무정신…… 어느 것 하나 나의 가슴을 진정으로 채우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던 것이다.
국내에서 대학까지 나온 내가 그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한 것이 한심하였지만, 문제는 그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나는 같은 질문을 주위의 한국인들에게 수없이 던져 보았지만 시원스러운 대답 한 번 듣지 못했다. ‘우리는 누구인가?’ ― 나의 고민은 이 때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자신 있게 대답한다. 우리는 하늘의 자손, 즉 ‘천손’이고 공통된 민족정신은 우주와 하늘의 섭리에 따르는 ‘천손정신’인 것이다. ‘하늘의 뜻’을 연구하고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우리는 ‘선비’라고 부르며 추앙하였다. 사극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이 누군가. 천문을 보고 천기를 누설하는 도인 아닌가.
‘천벌’을 두려워하며 의로운 삶을 추구하다 보니 ‘가난한 선비’가 자연스럽게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옛 그림에는 언제나 선비가 나온다. 그림에 나오는 낚시꾼은 단순한 어부가 아니라 세월을 낚는, 자연을 관조하는 선비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귀거래 후 누리고 싶은 ‘선비다운 삶’이 그림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정의되는 선비가 꼭 ‘공부를 많이 한 양반 남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음식에 음양오행의 원리를 담으려고 노력한 옛날 여인들, 약초를 연구하던 사람들…… 등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선비라는 점을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아울러 내가 이 책에서 말하는 천손정신이 순수하게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또 하나의 국수주의 주장으로 비춰지거나 순혈주의 주장으로 오해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1부에서는 우리가 하늘의 자손이라는 여러 증거를 나열해 본다. 아울러 하늘을 잊고 사는 우리 현실도 살펴본다. 2부에서는 하늘의 자손으로서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제시하고 싶은 하늘과 우주에 대한 지식, 우주시대를 사는 현대인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천문학 지식을 정리해 본다. 3부에서는 하늘의 자손이 사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다.
아무쪼록 이 책이 하늘을 잊은 하늘의 자손이 하늘을 되찾는 일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 사람은 참 별을 좋아한다” 같은 말을 외국인으로부터 들을 수만 있다면 나는 여한이 없겠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나는 기성종교를 가지고 있거나 역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니 어떠한 독자의 오해도 없기 바란다.
그 동안 나는 많은 공무원, 교사, 군인, 학생 등에게 이 책의 내용을 강의해 왔다. 열심히 듣고 여러 가지 좋은 의견을 주신 분들에 지면을 통해서나마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이 책을 출판해 준 김두희 사장님이 이끄는 동아사이언스에게 감사드린다.
2008년 1월 1일 대덕 별동산에서
박 석 재
---책머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