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게 되면 말없이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라도 첨부되어야겠지만, 제 명대로 살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바하게 마련이므로.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중독과 그리고 증오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라도 나를 쏘르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앞에서 보면 한걸음 한걸음 죽어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 p.74~75
선사는 못 드은 체 날이 새면 일터에 나가 일꾼드과 어울려 일을 한다. 이와 같이 해서 몇백 평의 논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거기에 든 노임은 이루어진 논의 시세보다 몇 곱 더 들어갔다. 그러나 선사는 없었던 논이 새로 생긴 것을 기뻐했다.
그는 세속적인 눈으로 볼 때 분명히 산술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어리석음으로 해서 흉년에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사연이 깃들인 논이므로 절에서는 그 논을 단순한 땅마지기로서가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사풍의 상징처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한결같이 약고 닳아빠진 세상이기 때문에 그토록 어리석고 우직스런 일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이다. 대우는 대지에 통한다는 말이 결코 빈말은 아닐 것 같다.
--- p.83
사람들의 취미는 다양하다. 취미는 감흠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적인 여백이요, 탄력이다. 그러기에 아무개의 취미는 그 사람의 인간성을 밑받침한다고도 볼수 있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개인의 신체적인 장애나 특수 사정으로 문밖에 나서기를 꺼리는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대개의 경우 여행이란 우리들을 설레게 할 만큼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 p.60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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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녹은 그 쇠를 먹는다. 녹은 쇠에서 난 것이지만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쇠를 못쓰게 만들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