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결심을 하는 편이다. 이달에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담배를 끊어야겠어! 운동을 매일 하자! 멋진 동화책을 만들고 말 테야! 이런 나에게 친구는 말한다. 이제 그만 좀 결심하고, 제발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받아들여. 지키지도 못할 약속으로 왜 그리 네 자신을 괴롭히는 거야? 맞다, 결심이 무너질 때마다 괴롭다. 내 자신에게 실망하게 되고 무기력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심이라는 게 그렇다. 일단 결심을 할 때는 꼭 지키고 싶고 또 지킬 수 있을 것만 같다. 지키지 못할 거라고 전제하고 결심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결심할 수 있는 건 어쩌면 결심한 일에 매번 실패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며칠이나 지속되는지가 관건이긴 하지만, 나는 뭐든 결심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남을 해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또 결심했다. 이번에는, 좀 버리자! 내가 가진 게 너무 많다고 느껴질 때, 그것들이 나를 빼곡하게 둘러싸서 갑갑하게 느껴질 때, 내가 당장 쓰지도, 그렇다고 앞으로 쓸 일도 없어 보이는 물건들이 자꾸 눈에 띌 때 지금 바로 낡은 양말이든 뭐든 하나 버려야 한다.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를 버릴 줄 알면 다른 것들까지 버릴 수 있을 테니까.---pp.10~11
코렐 간장 종지 여섯 개|집에 있는 코렐 그릇을 처분하기로 마음먹었다. 예전에 엄마가 필요 없다기에 냉큼 가져온 간장 종지들부터 시작이다. 나는 코렐 그릇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실용적이고 단정하고 깔끔한 모양들이 모범생 같아 재미없다. 우리 집에는 내가 사지 않았지만 여러 경로로 들어온 크고 작은 코렐 그릇들이 있다. 이모가 이사하면서 우리 집에 버린 코렐, 엄마가 가져가라고 해서 그냥 들고 온 코렐, 딸 이유식 그릇은 안 깨지는 게 최고라며 선물받은 코렐. 그래도 명색이 도예과 출신인데, 밥상에서는 좀 멋진 그릇에 담아 음식을 먹고 싶다. 친구 전시회 때 산 멋진 도예 그릇에! 그런데 코렐 그릇이 있으니 무심결에 툭툭 밥상으로 튀어나온다. 있으니까, 편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쓰게 된다. 코렐 그릇이 없었더라면 분명 식기장을 뒤져 더 예쁜 그릇들을 찾아 썼을 것이다.---p.63
엄마의 크리스찬 디올 캔버스백과 가죽 가방|언젠가 엄마가 자신의 삼십 대와 사십 대를 장식했던 빈티지 가방을 처분한다기에 내가 냉큼 가져왔다. 많이 낡았지만 잘 손질하고 수리하면 내가 엄마의 추억을 들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 마음 그대로 십 년이 그냥 지나갔다. 옛 사진들 속에도 선명하게 찍혀 있는 가방이라 간직해 왔지만 이제 엄마가 내 나이 적에 쓰던 가방들과 헤어질 시간이다.---p.64
피카소 그림이 있는 메모지|어느 날 남편이 선물한 재미있는 메모지다. 한 장씩 뜯으면 파블로 피카소의 얼굴이 위에서부터 스르륵 없어진다. 머리부터 차례차례 사라지는 것이 어쩐지 아깝기도, 잔인하게도 느껴져서 서너 장만 뜯어 쓰곤 못 썼다. 아무렇게나 뜯어 쓰는 상상만 하면서. 메모지를 메모지답게 과감히 뜯어 쓸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이 메모지의 진정한 주인이다. 나는…… 주인이 아니다.---p.121
남편이 만든 도자기 인형, 유령 고양이|아이러니하게도 내 방은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로 결심한 후 더 지저분해졌다. 버리기 위한 일기를 쓴답시고 집 안을 들쑤셔 물건들을 꺼내놓고서는 또 다른 버리는 상자에 넣고 있으니 별도리가 없다. 게다가 그 상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어쩌면 내 방이 어수선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길고양이를 위한 펀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구월 말에 벼룩시장을 열기로 했다. 드디어 여태 ‘버리는 상자’에 담겨진 물건들이 진짜 갈 곳이 정해졌다! 이젠 팔릴 만한 물건들을 모아서 버려야지. 어차피 일이천 원에 팔기로 했지만 고양이를 위한 벼룩시장이니 좀더 신경 써보자. 그리하여 남편의 동의하에 내 방을 떠나게 된 유령 고양이 두 마리. 어쩐지 한 아이는 웃는 것 같고 또 한 아이는 심각해 보이는 두 마리가 묘하게 잘 어울린다. 남편의 작품이니 멋진 주인을 만나길 특별히 바란다.---p.140
결혼 전 남자친구였던 현 남편에게 내가 선물한 캔 손잡이|어쩌자고 이런 걸 선물했을까? 남편도 오늘에서야 고백한다. “이제야 말하는데 이거 받고 진짜 황당했어!” 그럼 이십 년도 넘게 한 번 사용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물건을 싸안고 살아온 셈이다. 그때는 이게 남자가 좋아할 만한 물건이라 생각했다. 이런 걸 선물하는 쿨한 여자라는, 말도 안 되는 과시욕도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남자친구를 좀 웃겨보려는 생각도 있었겠지. 그런데 오늘 맥주 캔에 이 손잡이를 처음 끼워보니, 그럭저럭 편한데?---p.338
일 년 동안 버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버리면서 더 많이 얻었다. 끊임없이 버릴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분류하면서 무엇이 내게 더 소중한지를 절감했다. 내게는 여전히 버릴 유형·무형의 것들이 한 트럭은 더 있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버리지 않아도 될 것들,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로만 채워진 나와 우리 집을 상상한다. (…) 하나라도 더 가지는 것이 즐거운 당신이라도 문득 너무 많다고 느껴진다면 1일1폐 프로젝트가 필요한 순간이다. 버리면서 홀가분해지는 마음을, 버리면서 나눌 수 있는 기쁨을, 버리면서 알게 되는 소중함을, 그리고 덤으로 주어지는 새로운 삶을 당신과도 함께 누리고 싶다.
---pp.352~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