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프랑스는 막강한 부를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만의 예술양식을 창조하고자 했던 루이 14세는 자국의 훌륭한 예술적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했다. 그 어떤 것보다 뛰어난 프랑스만의 독보적인 예술을 원했던 왕은 품위와 아름다움을 지닌 바로크 양식의 베르사유 궁전을 건축하게 된다. 탁월한 예술적 재능을 지닌 프랑스 예술가들은 그들을 적극 지원하는 왕과 예술을 사랑했던 여러 권력자의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더욱 완성된 독창성과 세련된 표현으로 프랑스 미술의 황금 시기를 이루어 냈다. 그들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과 완벽한 비례미에 대한 이해 그리고 세련된 표현들은 프랑스의 미술이 세계 속에서 주도권을 가지게 된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p.19
1837년 영국에서는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한다. 이 시기는 근대적인 산업이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고 발달한 시기로 나날이 발전하는 기계들은 혁명과 같이 빠른 속도로 전통적인 수공업을 대신하게 되었다. 더불어 기술을 가진 수공예 시대의 기술자들이 서서히 사라지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는 가구 특징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없고 여러 가지 스타일이 혼합된 것처럼 보였다. 과거의 스타일을 복제하고 혼용하는 것이 특징이었으며 고딕 스타일이 다시 등장한 것도 주목할 일 중 하나이다. 1851년 개최된 수정궁(crystal palace)에서의 ‘런던 산업 대박람회’는 그 시대 사람들의 취향을 엿볼 큰 기회였다. 산업발전을 통해 생산된 제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려는 박람회였지만 출품된 제품 중에는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 수공예품도 많았다고 한다. 화려한 가구에 심취해 있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기호를 반영하듯 빅토리아 시대의 가구에는 장식적인 모티브가 빈틈없이 꽉 차 있었다.---p.43~44
덴마크의 핀 율(F i n n J u h l , 1912~1989)은 처음으로 국제적으로 알려진 데니쉬 가구 디자이너였다. 건축가였던 핀 율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가구 디자인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의 가구는 기본적인 의자의 구성을 하고 있으면서도 매우 조각적인 표현을 해서 명확한 구조와 비범하고 독특한 표현으로 이름이 나 있다. 의자에서 등받이와 좌석 부분이 각각 분리되어 강조된 의자들은 추상적인 표현과 탄탄한 구성으로 매우 아름답다. 그의 의자 중 가장 많이 알려진 ‘Chieftain Chair(1949)’는 분리된 좌석과 등받이, 그리고 나무 프레임이 마치 조각 작품처럼 잘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있고 ‘45 Chair(1945)’는 매력적인 우아함을 가진 의자로 이름이 나있다.---p.82
1973년 유류파동으로 말미암은 경제위기는 자유롭고 낙관적이던 사회분위기를 한순간에 소멸시켰다. 석유에서 생산되는 플라스틱 재료와 석유 화학 관련 제품의 가격이 순식간에 뛰어 올라 플라스틱 가구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업체들의 생존 전략과 비용 절감, 합리적 생산체제를 고민하게 했다. 또한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을 요구했고 소비자들의 실생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혀 모든 부분에서 절약과 절제, 친환경적 소비에 관심을 두게 했다. 자원의 재활용과 환경문제들이 대두하였고 기업은 대안으로 제시될 제품개발에 전념했다. 플라스틱 가구 대신 목재에 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시대적인 영향 때문이었다. 목제 가구가 대거 등장하고 화려한 색상의 가구들이 사라졌다. 가구업체들은 무채색이나 검은색을 선호했고 디자이너들은 목제 가구들을 디자인하는 데 집중했다. 1974년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는 많은 목제가구가 출품되었고 1978년 밀라노 박람회의 가구는 온통 목재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