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노 이모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좋질 않았단다. 가만히 누워 있어야만 했지. 발작을 일으키면 보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했어. 할머니는 그때 그런 딸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단다.'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할아버지와 함께 하루노 이모를 살리려고 무척 애를 썼지. 하지만 좋은 것, 즐거운 것이라곤 하나도 모른 채 열여섯 어린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가버렸단다.
--- p.64,---pp.8-14, 본문 중에서
'전화, 할아버지지?'
나오토가 고개를 끄덕이자 엄마는 나오토가 내려놓은 수화기를 들었다.
'아버지, 이번에는 어떤 일을 꾸미시는 거죠? 더 이상 상관하지 마세요. 아무튼 지금 아스카 자니까, 나중에 다시 거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렇게 말하고 난폭하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나오토는 어이가 없어 엄마를 보고 말했다.
'왜 맘대로 끊어요? 급한 일일지도 모르잖아요'
'숨겨도 다 알아. 너 우쓰노미야에 갔었지? 너도 아스카도 내 자식이야. 그런데 왜 할아버지한테 가는 거니? 중요할 때에는 왜 내옆에 있지 않는 거니, 응? 우쓰노미야에 가서 둘 다 이상해져 왔어. 할머니가 내 험담을 하던? 말해봐,나오토.'
갑자기 엄마는 울음을 터뜨렸다.나오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무슨 말이예요? 중요한 때에 힘이 되어 주지 않은 건 엄마예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없었으면 아스카도 나도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왜 그걸 모르세요? 난.....나는..... 엄마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 p.167
'저는 얼마전까지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어요. 엄마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겐 내 기분이 잘 전해졌죠. 왠지 아세요?'
'이해해 주려고 했으니까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저를 믿고 이해해 주려고 하셨어요. 제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제 마음까지 정확하게 이해해 주셨지요.그러니까 말이 있어도 없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은 믿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됐어요.'
--- p.132-133
'오빠.'
자고 있던 아스카가 눈을 비비며 나오토 옆으로 와 말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는 어디 있어?'
'어디 있냐니, 우쓰노미야에 계시잖아. 갑자기 무슨 잠꼬대야. 너?'
'아냐, 지금 할아버지가 날 불렀어.'
'전화가 왔었어. 네 목소리 듣고 싶다시면서.'
'언제?'
'조금 전에. 엄마가 끊었어. 그걸로 옥신각신하고 있던 중이야.'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오토는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아스카를 보았다. 아스카의 커다란 눈이 겁에 질려 있다. 나오토는 서둘러 우쓰노미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만 계속 울릴 뿐 아무도 받질 않는다. 불길한 생각에 가슴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전화벨이 울렸다. 나오토는 떨면서 수화기를 들었다.
'네, 여보세요?'
'나오토? 나오토니? 조금 전 할아버지가 쓰러지셨어. 구급차로 병원에 옮겼는데 이미 가망이 없다는구나. 의사가 아침까지 힘들 것 같다니까 엄마한테 어서 내려오라고 말해다오. 할머닌 너무 급작스런 일이라 뭐가 뭔지 모르겠구나.'
'가망이 없다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거예요? 조금 전 전화로 이야기를 했는데? 울지 마세요, 할머니. 곧 갈게요.'
--- p.169-170
어린아이에게 하는 것처럼 엄마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할머니가 말했다. 아스카는 살짝 화장실로 가서 세면대 거울 앞에 섰다. 생일 요리는 최고로 맛있었다. 마음도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런데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따. 아스카는 차가운 물로 눈물을 닦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생일 축하해, 아스카. 태어나길 잘했어.'
--- p.202,---1-8
아스카는 살짝 화장실로 가서 세면대 거울 앞에 섰다. 생일 요리는 최고로 맛있었다. 마음도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런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스카는 차가운 물로 눈물을 닦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생일 축하해, 아스카. 태어나길 잘 했어.'
--- p.202
아무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을 닫아 버리는 거야. 도와달라는 신호를, 그것도 필사적으로 보내고 있는데, 그걸 받아 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 신호도 결국 끊어져 버리지. 그렇게 되면 평생 아무도 믿지 않게 되고 자신의 마음을 죽이게 되는 거야.
--- p.34
목이 막혔다. 눈시울이 뜨거워져 하시모토 선생님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아스카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엄마는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말끔하게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으로 책상을 톡톡 쳤다. 짧게 한숨을 내쉰 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 수 없어요. 아스카는 안돼요. 그 아이는 사랑할 수 없어요"
표정이 사라진 아스카의 어두운 얼굴이 떠오르자, 엉겁결에 하시모토 선생님은 소리쳤다.
"왜죠? 엄마잖아요. 아스카는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할 뿐이에요. 왜 안되는 거죠?"
엄마는 손수건으로 눈물과 콧물을 찍어누르면서 계속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창가의 하얀 커튼이 흔들리며 나뭇가지 너머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노여움으로 뜨거워진 하시모토 선생님의 뺨을 바람이 어루만진다.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하시모토 선생님은 말했다.
"제 여동생도 아스카와 비슷한 증상이었어요. 중학생이었을 때 아이들의 따돌림이 계기가 되어 전혀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었죠. 동생의 경우는 학교에서만 그런 증상을 보였기 때문에 그래도 희망이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학교에서의 스트레스를 마음놓고 받아주는 엄마가 있었으니까요."
---p. 26
매일같이 내리는 비에 아스카는 점점 녹아 희미해져간다.있는데도 없는것같은 투명 인간이 되어 가는것같다. 할아버지가 따뜻한 우유를 갖다 주었다.아스카는 아기로 돌아간것처럼 할아버지에게 안겨 우유를 마셨다.꿀을 탄 따뜻한 우유는 정말 맛있었다.'외로움도 슬픔도 싹 없애주는 신비한 마법의 음료같아'아스카는 생각했다.
--- p.29----p.52
'난 말야, 죽고 싶었어.'
갑자기 쥰코가 말했다. 서쪽으로 기우는 저녁해가 쥰코의 옆얼굴을 비춘다.
'계속 어떻게 죽을까, 그 생각만 하고 있어.'
시게루의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아스카의 귀에 들렸다.
'하지만 알 수 없었어. 나, 죽는 것도 맘대로 할 수 없었어. 어떻게 하면 죽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지는 저녁해로 빨갛게 물든 쥰코의 뺨에 눈물이 흐른다. 아스카와 아키라는 양옆에서 쥰코를 꼭 안았다.
'모르는 게 나아, 그런 건....'
아키라의 목소리가 눈물로 흐려져 있었다.
'죽음같이 슬픈 건 생각하지 마. 목숨은 너 자신의 것만이 아냐.'
코를 훌쩍이며 아스카가 말했다.
--- p.109
나오토는 자신을 상처내는 것 외에 달리 마음을 지키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힘없는 여동생이 불쌍했다. 오빠로서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울어,아스카
-맘껏 큰소리로 소리쳐
-네 생각을 굽히 만
-오빠가 다 받아 줄게
--- p.39
'괜찮아요, 할머니. 아스카는 더 이상 엄마 마음에 들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아스카는 아스카,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솔직히 말하면 겁쟁이인 제가 맹세한 표시예요.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쟎아요. 화도 슬픔도 기쁨도 모두 소중히 하라고. 그렇게 하겠다고 저 맹세했어요. 하지만 뭐든 증거가 없으면 맹세를 한 것조차 잊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 p.8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