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수료했다. 2001년 제4회 『창작과비평』 신인소설상에 「야경」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3번 출구』(2005), 『하우스메이트』(2011), 테마소설집 『라일락 피면』(공저, 2007), 장편소설 『오프로드 다이어리』(2010), 『황금광 시대』(2011) 등이 있다. 서울문화재단 신진작가 발굴지원과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놈들이 가진 것도 순 엉터리 총이었어요. 어떻게 륙색 하나 제대로 못 뚫는지…….” 당시 정황을 잘 알고 있는 톰이 덧붙였다. “그기 다 돈심이었는기라. 돈심.” 박이사의 사투리 식 표현에 현은 피식 웃음이 났다. 돈의 힘.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건 돈뭉치의 힘이었다. 환전소에서 현찰 뭉치를 챙겨 넣은 후 배낭은 현의 등을 떠나지 않았다. 수백 장 빳빳한 지폐의 밀도와 부피감이 만들어낸 일종의 방탄벽이었던 것이다. 돈의 활용도란 이렇듯 상상을 초월한다. ---‘돈의 힘’, p.168 - - - - - - - - - - - - - - - 황금빛 꿈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를 현은 잘 알고 있었다. 행운의 여신이 내미는 손조차 거부했다. 대신 폐허 같은 어둠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길고 긴 어둠의 갱도 끝에 어쩌면 진정한 황금의 땅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금궤에 열광하던 그들을 단죄라도 하듯, 그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현이 도달한 곳, 그곳이 여기였다. 아니, 또 한 번의 선택이 있었지. 곱슬머리 사내가 내밀었던 선물. 둘 중 하나 택하시지. 몸을 팔 것인지 영혼을 팔 것인지……. 그때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본능에 따랐을 뿐이다. ---‘러시안 룰렛’, p.196 - - - - - - - - - - - - - - - 그는 한때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악명 높은 바이러스를 예로 들었다. 생존 기반인 숙주마저 파괴하는, 치명적 한계를 지닌 바이러스. 진화한 바이러스는 숙주에게서 한껏 영양을 취하면서 그것과 끝까지 같이 살아남는 것이다. 그러니까 카지노 혹은 도박이라는 바이러스는 숙주인 게이머가 건강하게 살아남도록 공생을 모색하는 존재로 끊임없이 진화, 변신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빅 딜’, p.217 - - - - - - - - - - - - - - - ‘게임 테이블에서 베팅 액수란 숫자에 지나지 않아. 만 달러나 1달러짜리 칩이나 플라스틱 조각에 불과하다고. 그럼에도 다들 수치에 휘둘리지. 하긴 나도 한때는 그랬으니까.’ 영국 카지노에서 나올 때 그가 한 말이었다. ‘왜 유독 바카라인가요?’ 현의 물음에 그의 표정이 시니컬해졌다. ‘난 남의 패에는 관심 없어. 내 패로 승부를 가리고 싶을 뿐이지.’ 그가 말한 패란 그걸 쥔 자의 운명을 뜻하는 것으로 들렸다. 그러니까 그가 펼치는 게임은 바로 자신의 운명과의 한판 대결인 셈이다.
배경은 필리핀 마닐라에서부터 미국의 라스베이거스까지 전 세계의 유명 카지노 관광지. 주인공 현의 눈을 통해 손흥수라는 프로 도박사와 카지노의 세계를 관찰한다. 현은 도박으로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하고 불어난 채무를 갚지 못해 영혼을 대신 저당 잡혀 손을 수행하게 된다. 손과 함께 각국의 카지노 안팎에서 전직 딜러, 도박에 빠져 판돈을 구걸하다 자살한 유능한 펀드 매니저, 인근 바 직원들을 만나며 현은 카지노의 세계를 학습한다. 패망하지 않고 프로 도박사 생활을 지속할 방법을 고민하던 손은 어느 날, 현에게 도박 중독을 막을 방법을 제안해보라고 요구한다. 이에 현은 도박에 영혼을 팔지 않은 채 체험학습 삼아 게임을 해볼 수 있는 테마여행을 기획하고, 둘은 여행을 떠난다. 목적에 맞게 판돈 상한선의 원칙을 고수하던 손은 여행 막바지에 엄청난 금액을 올인한 후 전부 잃는다. 손은 건 돈을 전부 잃었을 뿐 ‘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현에게 남기고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