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明師와의 만남이다. 대개는 항간의 잡설과 주워들은 학설로서 지엽적인 것만 추구하다 보니 大道가 날로 멀어지게 되고, 異端이 다투어 일어나는 풍속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며 만고의 진리를 가장하여 배우는 이들을 미혹에 빠트리면서 요결을 가르치고 법식을 전수하니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늘을 감동시키는 공덕을 쌓아야 명사와의 인연을 짓는 법. 만약 명사의 지점이 없다면 어떻게 화로를 앉히고 솥단지를 세울 것이며 어떻게 채약하여 약을 얻는다 하겠는가! ...
---「작가의 서문」 중에서
北窓선생의 “龍虎秘訣”이 햇빛을 본지도 어언 450여년이 지났다. 우리나라에서 仙道의 교재가 일천한 가운데 북창선생의 용호비결은 캄캄한 적막속의 한 줄기 횃불이었을 것이다. 이 용호비결을 교재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선도의 길을 걸었으리라! 나도 이 내용을 탐독해 보았으나 공부가 익어감에 따라 이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修丹之道는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쉽다.”로부터 시작한 이 修丹이라는 단어나 문장이 100% 이해 불가다. 閉氣와 胎息, 周天火候가 선도의 전부인양 소개하였으나 이것을 그대로 따라 공부하고 있는 선도인 들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北窓 鄭(1506~1549)은 당시 선도의 일가를 이룬 선생의 지도 없이 독학으로 공부한 자체부터 旁門左道의 길을 걷게 된 것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우리나라에서 신선의 경지에 오른 김가기, 최치원 등도 중국에서 스승들에게 사사받음으로서 높은 경지를 이루어 내지 않았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작가의 후기」중에서
“세간에서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이 사람 몸 받는 일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이 도이다.” 먼저 도의 세계로 들어간 선각자의 말이다. 비록 사람이 삼재품 대열에 끼어 만물의 영장이 되었으나 그것을 최상으로 끌어 올리는 일은 스스로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인즉 도가수련을 선택한 선각자의 넋두리 같지만 후학도 들에게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일갈이기도 하다. 즉 너무 쉽게 생각해서 쉽게 얻으려 하지 말라는 일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길을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망설임을 감당해야 했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많은 득도 지망생들이 이 길에 나섰지만 유·불·도를 포함하여도 정과를 이룬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느뇨?” 나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바로 답이 돌아왔다, “석가세존께서도 500생을 윤회하고 득도하여 대각을 이루 셨느니...” 그렇다, 득도하겠다는 것에 매달리면 또 다른 번뇌와 망상이 나의 뼈와 살을 파고 들어올 뿐이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다, 도의 정신만을 보고 무식하게 뛰어들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무엇보다도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이기에 아까운 시간을 허비해 버린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진가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간단한 예를 든다면 이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배우고자하는 문중이 얼마나 오랜 전통과 정통성이 있느냐를 알아 본 다음, 배우는 공법으로 진선들이 배출되었느냐, 그리고 직접 가르치는 선생님의 공능은 실재 존재하느냐, 또 선생님 은사의 경지는 어느 정도냐, 정도만 검증해도 충분한 답이 될 것이다. 콩에서 팥이 생기지 않으며 봉황이 까마귀를 기르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삿된 스승이나 이상한 지파들은 모두 당대에 만들어져서 수 천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다고 자랑했지만 결국 당대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지 않았는가? 도가의 도조는 노자다. 노자의 맥을 이어받아 그 공법을 계승하는 종파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것이 우리의 공부다.
또 하나는 반드시 명사明師와 만남이다. 대개는 항간의 잡설과 주워들은 학설로서 지엽적인 것만 추구하다 보니 대도가 날로 멀어지게 되고, 이단이 다투어 일어나는 풍속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며 만고의 진리를 가장하여 배우는 이들을 미혹에 빠트리면서 요결을 가르치고 법식을 전수하니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늘을 감동시키는 공덕을 쌓아야 명사와의 인연을 짓는 법. 만약 명사의 지점이 없다면 어떻게 화로를 앉히고 솥단지를 세울 것이며 어떻게 채약하여 약을 얻는다 하겠는가, 간을 가리켜 용이라 하고 폐를 호라 하나 어떻게 교합시킬 수 있으며, 감坎이 연鉛이 되고 이離가 홍汞이 됨을 알지만 어떻게 빼고 더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거河車를 굴리고 화후조절은 어떻게 할 것이며 어떻게 활자시를 기다려서 공양하며 어떻게 결태와 결단은 할 것인가. 이것을 명사의 지점 없이 삿된 스승을 만난다거나 또는 책이나 보고 혼자 공부한다면 옆길로 빠져 버리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 털끝만한 차이도 결국 천리의 거리를 갖게 한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혔다.
“달마가 서쪽에서 한 글자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오직 마음과 뜻에만 의지하여 공부 하였으며 만약 책속에서 불법을 찾을 수 있다면 붓 끝으로 동정호洞庭湖의 물을 찍어 다 말릴 것이다,” 라고 한 것은 선禪의 수행은 글자에 매달리지 말라는 말이다. 도가의 공부 역시 수학修學이나 수행修行이아닌 수련修煉이니만큼 명사의 지점 없이 책속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그 결과는 그림자(陰功)만을 보게 될 것이고 또 그것만을 갖게 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시행착오에 대한 보상이 되었으리라!
우리나라에는 선도에 관한 역사를 기록한 저술은 많으나 전통 선도를 공부하는 과정 즉 교육용으로 저술한 것은 16세기 전반기를 살아온 북창 정염鄭?(1506~1549)의「용호비결龍虎秘訣」을 꼽을 수 있고 그 밖에는 일반에게 알려진 것이 없다, 북창은 그 시대 기인으로 유·불·도를 넘나들면서 소요자재 한 분으로「용호비결」이란 걸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4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도를 지망하는 후학도 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며, 그로인해 선도의 맥은 단절됨이 없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옛날에는 선도에 관한 책을 펴내는데 생각보다는 신중을 기했다, 중국의 어느 선인은 선도에 관한 글을 쓰는 소회를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무릇 무극진도는 자고로 입에서 입으로만 서로 전하며 감히 붓으로 기록하여 글로 남기지 아니한 것은 행위가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얻으면 반드시 하늘의 견책譴責을 만날 것을 두려워 한 것이다. 비록 글을 써서 그 가운데 도를 담아 놓는다 해도 반드시 비유의 말로 하였는데 어머니는 숨겨두고 아들만 말하고 뿌리는 숨기고 가지만 말 하였다, 대개 이런 것은 사물을 빗대어 도를 밝힌 것인데 마치 장씨의 관을 이씨가 쓰고 있는 격인 것이다. 나 역시 함부로 누설하지 못하고 이제 이 진도를 어렴풋이나마 대강만 드러내어 도를 찾는 증빙이 되게 하고 자칫 잘못 하여 사도방문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할 뿐이다.”
도가의 책들을 보자면 대부분 은어가 많고 비유를 써서 이야기 하는데 간단한 예를 들면 “삼성三姓이 이미 회합하고 이물二物이 서로 끌어안아서...” 의 문장 중에서 삼성은 정精·기氣·신神을 말한 것이고 이물은 연鉛과 홍汞을 말한 것이다, 또 몸 부위 어느 지점을 상징하는 단어도 혼란스러울 정도다, 즉 상단전을 지칭한 용어만도 약 50개 중단전을 말하는 용어도 70여개에 이른다, 그것뿐이 아니다, 수련을 시작할 때 가장 기본적인 호흡만 해도 코로 숨을 쉬는 비 호흡에서부터 발뒤꿈치로 쉬는 종식踵息과 마지막 태식胎息까지 20여 종류가 된다, 어찌 간단하고 쉽다고 할 것인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총명聰明하지 않으면 여간한 노력으로는 불가능 하다, 예로부터 천기를 가벼이 누설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고 그것을 경직되게 따르다 보니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긴 하지만 그래도 한 귀퉁이에 불만이 남아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9세기 중반 김가기金可紀라는 신라인이 있었다, 그는 원효나 의상과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다, 그도 새로운 문물을 배우겠다고 당나라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섬서성 종남산 자오곡에서 종리권에게 선도를 배운다, 40여년을 정진한 후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고 2,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화등선羽化登仙 한다, 「속신선전續神仙傳」에 의하면 신선술을 공부하여 우화등선한 사람은 모두 16명이라고 한다, 당시 신라인 김가기도 당당히 16선중 한사람이 되면서 중국도교의 신화적 존재가 되었고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유일무이 하다.
... 하략 ...
---「서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