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는 영국의 포츠머스에서 해군 경리국의 하급 관리였던 존 디킨스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배로의 슬하 여덟 아이 가운데 둘째 아들로 1812년 2월 7일 태어났다. 찰스가 다섯 살 때, 가족은 채텀(Chatham)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그가 열 살 때, 가족은 다시 런던의 캄덴으로 이사했다.
사립학교에서 약간의 교육을 받았지만, 경제관념이 부족했던 아버지가 채무 관계로 갇히면서 가세가 점점 기울었다. 디킨스는 공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으나, 부모님의 권유로 돈을 벌기 위해 12살 때 런던의 한 구두약 공장에 견습공으로 취직하여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 10시간의 노동을 해야 했다. 이로 인해 디킨스는 어른들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이 경험은 그에게 큰 상처를 남겼으며, 자서전적인 소설인 《데이비드 코퍼필드》(1849∼1850)에는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어린 찰스가 노동자로 전락하여 느끼는 고통스러운 좌절감이 잘 나타나 있다. 자본주의 발흥기(勃興期)에 접어들던 19세기 전반기의 영국 대도시에서는, 번영의 이면에 무서운 빈곤과 비인도적인 노동(연소자의 혹사 등)의 어두운 면이 있었다.[
디킨스는 중학 과정의 학교를 2년 정도 다니다가 15세때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환을 했으며 다음해 1828년 법원의 속기사를 거쳐서 신문사 속기 기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여러 신문사에 글을 기고하게 되는데, 1834년 《아침 신문》의 의회 담당 기자가 되어 처음으로 ‘보즈’라는 필명으로 런던의 삶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발표했고, 1835년 조지 호가스가 편집인인 《저녁 신문》에 〈런던의 풍경〉 등 여러 글을 기고했다. 디킨스는 조지 호가스와 인연을 맺으면서 그의 딸인 캐서린과 결혼하게 되었고, 처제인 메리를 데리고 첼시에 정착하는데, 메리가 1837년에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순수했던 메리에 대한 그리움은 나중에 《골동품 가게 이야기》(1840∼1841)에서 어린 넬로 재현된다.
소설의 인기로 많은 돈을 벌게 된 디킨스는 가정적으로는 별로 행복하지 못했다. 결국 거듭된 과로로 인해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을 완성하지 못하고, 1870년 6월 9일 58세의 나이로 개즈 힐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후 디킨스는 성공회 교회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들의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