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은 조사들이 바로 가리켜 지시한 직지인심의 공안이라는 대본을 가지고 간화행자가 하나의 화두를 간택하여 끝없이 본을 뜨는 것이다. 마치 연주자가 작곡가의 악보를 자기의 전 생명으로 삼아 의지하다가 문득 득음을 하듯이 자기의 천진한 성품에 계합하여 한바탕 크게 웃는 것이다. --- p.7
조사가 말씀하시기를 ‘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깨침이 더딜까를 두려워하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화두 참구의 핵심이 되는 이치이다. 그러나 초심자들은 경계를 대하거나 망상이 일어나면 두려운 나머지 ‘어째서’나 ‘왜’라는 말을 앞세워 금방 끊어버리는 것으로 공부를 삼는다. 일어나는 망상이나 대하는 경계는 어떤 것이든지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므로 먼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금방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러면 눈앞에는 홀로 알 수 없는 것이 돈발하는데 바로 본참 공안으로 가져와서 의정을 일으켜야 한다. 이것이 화두 제시의 첫 단계이다. --- p.48
마음이 본래 부처라는 확실한 믿음을 성취하여 한번 크게 엎어지고 나면 버젓이 일상사에서 쓰고 있는 일체 작용 속에서 스스로 나타나는 불성과 바로 하나가 된다. 그러면 주객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순간 일행삼매로 나아간다. 그때 만나는 사람은 인형처럼 보이고 사물은 환화의 모습이어서 집착하거나 걸림이 없으니 오직 일체 경계가 마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 p.81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마음은 이와 같이 신령스럽게 아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호박은 둥근 줄 알고 오이는 길쭉한 줄 알며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목마르면 물 마실 줄 알며 더운 줄 알고 시원한 줄 알며 또한 이렇게 능히 모든 것을 잘 분별할 줄 안다. --- p.128
깨닫기 전에는 누구나 많은 방편으로 마음의 소재를 찾아 나선다. 마치 물고기가 한 번도 물을 떠난 적이 없지만 물을 찾는 것과 같이 한 번도 마음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잃어버렸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온갖 수행 방법으로 찾았지만 알고 보니 결국에는 한 번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마치 파도가 물을 떠나지 않았듯이 찾는 마음이 이미 쓰고 있는 본래 마음임을 깨달았다. --- p.130
한바탕 장맛비가 지나가고 나니 파도는 다시 잔잔한 미소로 넘실거리고 있다. 파도는 물을 떠나지 않았고 물은 파도를 떠나지 않았듯이 성품의 본체와 작용은 둘이 아니다. 모든 현상은 물거품 같고 아지랑이 같아서 번뇌 망상과 일체 대상은 본래 공한 것이지만 이 모든 현상이 본래 공한 곳에 신령스러운 앎이 어둡지 않다. 이와 같이 텅 비어 고요한 가운데 신령스럽게 아는 것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적영지한 본래 마음이기 때문이다. --- p.150
보통 사람들은 소리를 들을 때 그 소리를 따라가서 분별을 하고 번뇌를 일으켜 고통을 당한다. 그러나 수행하는 사람은 소리의 성품이 본래 공함을 살펴 소리를 따라가지 않으며 듣는 성품을 바로 보게 된다. 다만 소리를 들을 때는 성품이 귀에 나타나므로 소리를 듣고 분별을 일으키지 않고 바로 돌이켜 듣는 성품을 깨닫기 때문이다. --- p.186
한 줄기 비바람이 지나가니 산천초목은 관욕을 마치고 법열에 젖어 춤을 추고 하늘에는 광명이 찬란하다. 오랜 무명의 안개가 걷히고 나니 바다는 툭 터져 끝이 없고 잔잔한 파도의 이랑엔 고기들이 널을 뛴다. 온갖 꽃들은 다투어 피어 향기를 발하고 새들은 저마다 목청을 가다듬어 범음을 노래한다. --- p.214
달은 잘나거나 못난 사람이나 가난하거나 부자라고 해도 평등하게 비춰준다. 또한 큰 죄를 짓거나 학문이나 지위가 없어도 누구나 둥근 달 하나씩 품고 있다. 다만 사량 분별과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만 없으면 사람마다 차별 없이 가지고 있는 불성은 청풍명월과도 같아서 바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 p.235
자기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자기 내면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자. 무명의 어둠 속에서 한 톨의 불씨를 찾아내야 한다. 이 작은 불씨가 결국에는 자기를 밝히고 세상을 밝히는 지혜의 불씨이며 시절인연을 만나면 부처를 이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