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했던 소설을 책으로 묶다보면 이야기의 중복도 많고 작가가 즐겨 쓰는 반복 표현도 자주 눈에 띈다. 그 중에 가장 민망한 것은, 잦은 빈도의 상투적인 어법과 버릇으로 굳어버린 자기류의 껄끄러운 글꼴이다. 이런 것을 좋게 말해 작가의 개성이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개성도 눈에 튀면 보기 흉하기는 마찬가지다.
연재 직후 서둘러 책을 만드느라 현대문학사에서 나온 초판에는 연재물의 모든 단점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다른 장에 중복되어 나타나고, 꼭 있어야 될 이야기는 뒤로 미루다가 오히려 빠져 있다.
이번에 새로 쓰고 고치면서 이러한 중복과 소루(疏漏)들을 바로잡거나 보완했다. 그러나 20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라 그 즈음의 풍속과 지금의 세태 간에 큰 격차가 있음을 실감한다. 남녘 바다 시산도에 낚시를 다니던 80년대 초반 무렵에는, 요즘 유행하는 개인 휴대폰은 상상도 못한 물건이다.
세태와 풍속은 변했지만 사람들의 심성만은 예나 이제나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과학이나 문명처럼 사람의 심성도 진보하거나 발전한다면 문학과 철학의 고전들은 존재 이유가 없을 것이다. 작품에 손을 대면서 새삼스레 확인한 것은, 진실이란 무엇이며 우리의 삶에 어떻게 기능하는가 하는 것이다. 진실은 거짓의 반대가 아니다. 거짓은 능동적으로 일을 만들고 꾸려가지만 진실은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존재가 바로 진실의 발언이며, 침묵과 무위가 진실의 본래 모습이다.
침묵하는 진실과 일 만드는 거짓 사이에서 우리가 할 일은 매우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거짓을 상대로 하여 맞서 싸우는 데는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거짓은 우리보다 목소리도 클 뿐더러, 자기 변호와 사후 대처도 매우 민첩하고 능숙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살기를 권장하는 세상이라, 어떤 사람은 맞서 싸우려 하지 말고 거짓과 적당히 더불어 살기를 권하기도 한다. 한번 생각해볼 일이긴 하지만 썩 좋은 권고는 아닌 것 같다. 한 끼 밥을 굶을망정 거짓과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고 고집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많다. 그런 사람들의 고집이 옳은가 그른가를 가리는 일은 별 의미가 없다. 세상에는 쓸모 있는 거짓과 쓸모 없는 진실이 함께 섞여 있기 때문이다.
--- 작가의 말
허탈하다. 큰 짐을 부려놓은 듯한 홀가분함은 잠시뿐이다. 얼마 전까지도 간절히 원했던 가막도에 대한 사실 보도가, 지금의 인규에게는 묘한 허망감과 아쉬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하루 늦게 도착하는 신문보다 매일 시간별로 전달되는 라디오 방송들의 흥미 위주의 날조된 보도들은, 듣기가 민망할 정도며 때로는 역겹기까지 하다. 역겹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차라리 남의 옷을 강제로 벗긴 듯한 부끄러움에 더 가깝다. 감춰진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거짓으로 위장된 옷은 반드시 벗겨져야 한다. 그러나 모든 상처가 진실의 이름으로 반드시 즉석에서 고쳐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어떤 상처는 수술을 뒤로 미룬 채 화자와 함께 관 속에까지 동행하는 것도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드러난 상처보다 그 상처를 도려내는 시술이 더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막도라는 섬으로 낚시 여행을 떠났던 잡지사 편집장 김인규는 폭풍 때문에 섬에 발이 묶인다. 가막도는 뭍과 거의 왕래가 없으며 주민들은 외지인을 달가워하지 않고 뭍으로 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배도 그에게 내어주려 하지 않는다. 김인규는 곧 가막도가 구한말 무렵부터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영위해왔으며 외부로부터의 틈입을 막기 위해 폐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김인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뱃사공에 의해 솔섬이라는 무인도에 버려지지만 곧 안종선이라는 사람에 의해 구출되고 그에게서 가막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으며 의사가 상주하지 못했던 이 섬에서 아편을 제조해서 비상구급약으로 썼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그는 가막도에서 외부인인 자신이 무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짐작하며 자진해서 섬을 떠나지 않겠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가막도 주민들 사이에서도 더 이상은 외부와 절연한 상태로 살 수 없다는 사람들과 이대로의 생활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사람들로 나뉘어질 무렵 뭍에 수학여행을 갔던 아이들 중 몇몇이 병에 걸려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사건이 생기게 되고 곧 아이들의 병은 마을 내에 전염되면서 마을을 삽시간에 휩쓸게 된다. 이는 가막도에 위기를 가져오고 당국은 콜레라가 발병했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면서 외부에서 환자들을 실어와 가막도에 은폐시키려 하면서 주민들과 당국의 갈등은 점점 커져가기만 한다. 김인규는 이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주민들과 당국 사이를 중재하지만 그의 노력은 실패하고 분교 교사 오정은에게 자신의 가막도 체류 생활을 쓴 일기를 건네주어 방송국에 가막도 주민과 당국 모두의 허위를 폭로한다.